오피니언 사설

언론 비판하던 언론노조의 부끄러운 자화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전국언론노동조합 전 집행부가 거액을 횡령한 혐의로 어제 검찰에 고발됐다. 고발한 당사자는 지난달 출범한 현 집행부다. 전임자들의 돈 씀씀이를 조사해 보니 총무부장이 3억여원을 멋대로 빼돌렸으며, 별도로 조합 고위간부들이 1억5000만원을 영수증 처리도 하지 않은 채 써버렸다는 것이다. 유용한 돈 중 상당액이 민주노동당 정치자금으로 제공됐다는 주장이 나오자 당사자인 민노당이 펄쩍 뛰며 부인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언론노조가 그동안 언론인의 도덕성과 투명성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은 자신에게 쏠린 의혹에 대해 석명서를 통해 "총무부장을 만나 횡령 의혹에 관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며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1억5000만원에 대해서는 "노조 활동과 관련없는 사적인 용도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관련 규정의 미비로 관행에 따른 지출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잘못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신씨는 또 "조합 내 기구를 통해 소명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떳떳하다면 검찰 수사에서 속속들이 밝히면 된다. 언론노조는 그동안 성명이나 논평을 통해 지방신문사 대주주를 "구속 수사하라"고 촉구하거나 방송사 전 사장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곤 했다. 비리 의혹이 제기된 기자들에게는 즉각 사직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안 그래도 언론노조는 언론인의 권익과 공정보도를 추구하는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특정 이념이나 세력에 기운 정파적 행태를 일삼아왔다. 지난해 북한 핵실험 후에는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은 미국이다"라고 주장해 많은 국민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언론노조 출신이 현 정권에 여럿 포진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주먹구구식 회계나 특정 개인의 부정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검찰은 전임 집행부의 정치자금 제공설을 포함, 모든 의혹을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