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테크 초대석] "주식도 밥처럼 오래 뜸 들여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이탈리아 식당 안토니오-.

이곳엔 훤칠한 외모에 날렵한 수트를 입은 미국인이 가끔 들른다. 그는 식당의 공동 주인이기도 하다. 바로 푸르덴셜 국제투자부문 아시아총괄본부의 크리스토퍼 쿠퍼(40) 사장이다.

“이탈리아 친구가 식당을 연다고 하자 1년여 전에 지인들과 함께 투자했어요. 날이 푸근해지면 테라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지요.”
금융과 레스토랑-. 언뜻 보면 어색한 궁합이다. 그러나 종자돈과 밀가루라는 풋풋한 재료를 주무르고 매만져 고객의 입맛을 채우는 마법이란 점에서 둘은 닮았다.

쿠퍼 사장이 이채롭게 식당에 손을 댄 이유도 마찬가지다. 1년8개월 전인 2005년 9월 푸르덴셜이 외국계 금융사 중 처음으로 아시아본부를 서울에 설립하기로 하면서, 그는 본부의 초대 사장을 맡았다. 뭔가 단단히 보여줘야 하는, 어깨에 묵직한 짐을 얹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더 많은 한국인을 만나고 더 깊게 한국시장을 이해하는 공간이 안토니오다.
최근 강남구 역삼동의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다. 쿠퍼 사장은 한국인의 노후준비며 자산운용 등에 대해 평소 한국 공부를 통해 갈고닦은 레시피(recipe)를 아낌없이 꺼내 들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노(老)테크에서 아직 주식투자 비중이 낮습니다.”

주식에 돈을 더 넣으라-. 펀드 장사에 급급한 운용사들의 상투적인 호객행위가 아니던가. 불안한 주식에 넣었다 쪽박을 차고 노년에 밥을 굶게 되면 어쩌란 말인가.

그러나 그는 한 발짝 더 나갔다. “무작정 주식에 투자하라는 게 아닙니다. 미국에선 한번 시장에 들어가면 들락날락하지 않고 우량주에 20년 정도로 길게 투자하는 관행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장기투자를 하면 승산이 크다는 얘기였다. 미국에선 펀드 투자자 중 45%가 주식형을 낙점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국의 주식형 비중은 아직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저도 세금을 덜기 위해 상장주식펀드(ETF)나 뮤추얼펀드에 많이 투자합니다.”

그래도 알토란처럼 모은 돈을 주식에 묻어두기엔 찜찜하다는 사람이 많다. “한ㆍ미 양국의 노테크에서 가장 큰 차이는 ‘글로벌’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어요.” 쿠퍼 사장은 리스크를 이해하고 분산투자를 하는 게 뼈대라고 했다. “푸르덴셜이 한국에 진출한 뒤 주력한 점도 국내ㆍ역외 펀드 가리지 않고 다양한 상품에 나눠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죠.” 그는 “푸르덴셜투자증권은 고객에게 자산의 30%를 해외펀드로 분산투자하도록 권유한다”고 말했다. 지구촌 곳곳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재빠르게 유행 상품군을 발굴할 수 있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전략은 한국의 부자들에게도 먹혔다. 그가 푸르덴셜증권 사장으로 있던 2005년 3월에 선보인 ‘글로벌부동산증권펀드’가 대표적이다. 이 펀드는 지금까지 68%의 누적수익률을 올리며 1조원을 끌어 모으는 성공작이 됐다. 소득 상위 7% 안에 드는 부자 고객들에게 한 발 앞서 다가간다는 전략을 쓰는 푸르덴셜 입장에선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은행들은 중국펀드 인기가 주춤한 최근에 와서야 프라이빗뱅킹(PB) 센터 등을 통해 유행처럼 글로벌부동산펀드를 권하고 있다.

쿠퍼 사장은 시장 성숙도에 따라 노후준비도 ‘은행 → 보험 → 퇴직연금+펀드’의 3단계 진화를 밟는다고 했다. 한국은 끝 단계로 빠르게 접어든다고 말했다. 그는 “일정한 돈을 꾸준히 떼어 장기투자를 하면 주가가 비쌀 때는 적게 사고, 쌀 때는 많이 사는 ‘코스트 애버리징(cost averaging)’ 효과를 통해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충분히 뜸을 들여야 기름진 밥이 된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투자철학은 프루덴셜의 ‘일주일 3센트(3 cents a week)’ 원칙과 맞물려 있다. 이는 1875년 존 드라이든이 푸르덴셜을 세울 때 당시 일부 부유층만 가입할 수 있던 보험을 일주일에 3센트씩만 꾸준히 내면 되는 상품으로 탈바꿈시켜 대박을 터뜨렸던 데서 유래한 투자 원칙이다.

그래서 펀드를 팔 때도 ‘인스턴트 조리법’은 피한다. 예컨대 은행에 가면 ‘요새 A펀드 수익률이 좋은데 한번 들라’는 권유를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쿠퍼 사장은 “주치의 개념으로 고객의 생애에 걸친 금융자산 배분 관점에서 펀드를 판다”고 강조했다. 보험에 들 때 재무설계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차별화로 푸르덴셜은 현재 11조원의 고객 돈을 관리하며 외국계 자산운용사 중 수위권을 다투는 회사가 됐다. 물론 과거 ‘바이 코리아’ 펀드로 돌풍을 일으킨 현대투자증권을 인수한 덕도 있다. 푸르덴셜은 1989년 보험으로 한국에 진출해 2004년 2월에 현투증권을 사들여 자산운용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주식 얘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던 그에게 “어떤 업종ㆍ종목을 유망하게 보느냐”고 물었다. 쿠퍼 사장은 “답을 안다면 당장 나부터 투자하겠다”며 웃었다. 그러곤 “개인적으로 10년 이후를 봤을 때 금융주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금융기법이 점점 고도화하면서 자산운용사ㆍ은행 등의 수익성이 좋아진다는 얘기다. 특히 여러 시장이 연결되고 통합되면서 리스크가 한 곳으로 몰리지 않아 금융회사들이 연쇄 파국을 맞을 우려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정보기술(IT) 섹터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쿠퍼 사장은 “2000년대 초의 닷컴버블 붕괴는 이례적이었다”고 했다. 당시엔 제대로 된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실적을 못 내 거품이 쌓였지만, 지금의 IT 기업들은 전략적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역량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쿠퍼 사장은 한국의 자산관리 시장을 ‘새벽 산업’이라고 했다. 3~4년간 규제가 많이 풀렸고 투자자 수준도 높아지면서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은 사람장사라고 한다. 돈 불리는 데 밝은 직원이 필요하고, 고객 입맛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쿠퍼 사장은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연예인과 친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MC 김제동씨와는 돈독한 친분을 자랑한다. “현투증권 인수 후 사내 체육대회를 했는데 장대비 속에서도 예정을 2시간 넘긴 4시간동안 사회를 봐줘 감격했고 식사를 하면서 그의 인간미에 반했어요.” 여름에는 거의 매주 한 번씩 만날 정도라고 한다. 김씨를 통해 가수 윤도현씨도 알게 됐는데 차에 그의 CD를 갖다 놓고 노래를 자주 듣는다.

돈 냄새만 풍기지 않고 나눔 문화에 힘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쿠퍼 사장은 올 1월 초 푸르덴셜사회공헌재단을 세웠다. 중ㆍ고생 자원봉사자를 발굴하고, 실직자 가정의 대학생 학자금을 지원하는 등 청소년 사업을 벌이는 곳이다.

한국인과 김치찌개의 맛을 깨우쳐가는 그가 한국의 투자자들 앞에 어떤 상품과 투자전략을 요리해 내놓을지 궁금하다.

김준술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