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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에서|각박한 도회생활에 "청량제"|호암아트홀「화니와 마리우스」를 보고…신현숙(덕성여대교수 연극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오랜만에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는 연극이 자유극단에 의해 호암아트홀무대에 올려졌다.
보통사람들의 꿈과 사랑, 좌절과 슬픔, 작은 행복 등을 건강한 유머와 함께 펼쳐 가는「화니와 마리우스」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마농의 샘」으로 우리 나라 관객에게도 친숙한 마르셀파뇰의 3부 작인「화니」「마리우스」「세자르」를 김정옥 교수(중앙대·연출)가 한편으로 압축해 연출한「화니와 마리우스」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통속적인 주제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무대처리와 노련한 연기진에 의해 건강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무대는 프랑스의 항구도시 마르세유. 바다를 동경하고 항해사가 꿈인 청년 마리우스와 조개를 파는 순박한 처녀 화니 사이의 애틋한 사탕이 펼쳐진다. 마리우스는 먼바다로의 항해와 결혼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그를 깊이 사랑하는 화니는 그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그가 바다로 떠날 수 있게 도와준다. 화니는 마리우스의 아기를 갖게되고 아이를 위해 중늙은이지만 선량하고 부유한 파니스와 결혼한다. 그로부터 2년 후 마리우스는 화니를 찾아 귀향하지만 안락하게 살고있는 화니와 어린아이의 행복을 위해 다시 머나먼 항해 길에 오르고 만다.
그 동안 철저한 실험정신으로 괄목할만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자유극단이 이번에「화니와마리우스」를 전통적인 감상주의와 멜러 드라마수법으로 무대에 올린 것은 의외였다. 그러나 연출가 자선은 이 연극을 통해『각박한 현실주의와 실리주의가 전횡하는 사회에서 중화작용을 하고 싶다』고 밝혔듯이 이번 공연은 지나친 엘리트주의, 난해한 예술성, 강압적인 이데올로기 등에 지친 관객의 머리를 식혀주고 부담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극단「자유」는 해학과 서정의 절묘한 결합을 우리감각에 맞추어 성공적으로 표출해냈다.
이는 원로연출가 김정옥씨의 탁월한 구성력과 사실주의 수법을 사용한 화려한 무대미술, 중견연기자들인 박인환·박웅·김금지의 노련한 연기, 두 주인공 역을 맡은 박상원과 채시라의 풋풋한 연기 등의 적절한 결합으로 가능했다. 특히 극중인물들의 성격이 뛰어나게 묘사되어 실제인물과도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파뇰은 서민적 삶의 애환 속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진실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던 작가다.「화니와 마리우스」는 바로 그러한 진실을 통해 우리가 잃어 가는 따뜻한 인간감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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