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넋 앞의 아빠… 참회의 눈물(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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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효성이가 공원 한구석에 앉아 우두커니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걸 여러번 봤습니다. 어린 것이 얼마나 외로우면 저럴까 싶어 이웃어른들 모두가 마음아파했었죠.』
25일 오후 서울 한강로 중앙대 용산병원 영안실. 아버지에게 매를 맞다 숨진 이효성군(4)의 빈소에는 영정이나 향불은 물론 찾아오는 사람도 하나 없이 동네사람 몇명이 교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군은 이날 새벽 아버지와 둘이 살던 서울 만리동 셋방에서 술취한 아버지 이상명씨(35·노동)가 『왜 밤늦게 돌아다니느냐』며 주먹으로 얼굴과 배 등을 마구 때리고 이군의 몸을 들어 벽과 장롱 등에 집어던지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숨졌다.
하지만 효성이가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효성이는 다른 아이들 같으면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고 어머니품에 안겨 재롱이나 피워야할 저녁시간에 집에 가지 않고 인근 공원을 배회하는 버릇이 생겼다.
효성이는 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두살때 술주정하는 아버지가 싫다며 가출해버렸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자기를 버리고 가버린 어머니가 너무나 그리웠다.
아버지가 오전 8시쯤 효성이가 하루종일 먹어야할 밥과 반찬을 한상 차려놓고 운수회사에서 짐을 옮겨싣는 막노동을 하러 가버리고 나면 아무도 보살펴주는 사람없이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런 효성이에게 집근처의 손기정공원은 좋은 놀이터였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형들은 처음에는 너무 어리다고 끼여주지 않았지만 결국 매일 「출근」하는 효성이와 함께 놀아주고 과자를 사주기도 해 그럭저럭 엄마생각을 하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형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버리는 저녁이 효성이에게는 너무 싫었다. 텅빈방,술이 취해 들어오면 수시로 몽둥이를 휘두르는 아빠…. 『야간순찰도중 혼자서 놀고 있는 효성이를 발견하고 파출소로 데리고 오는 일이 잦았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때려서 집에 들어가기 싫다며 울먹이기도 했고요.』
효성이의 집근처 파출소 순경의 말이다.
『제가 미쳤습니다. 그 불쌍한 놈을…』
아버지 이씨의 뒤늦은 몸부림은 보는이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 뿐이었다.<하철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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