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위상격상에 큰 기대/중량급 조순 총재 맞은 한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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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금융자율화 강조… 통화정책 변화여부 관심
13대 여소야대 국회중반때 부총리를 지냈던 조순씨(64)가 14대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되기 전인 26일 한은총재에 취임하면서 향후 한은의 위상과 통화정책이 과연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직 부총리,오랫동안 화폐금융론을 강의해 온 학자라는 경력과 육사의 사제지간이라는 노대통령과의 개인적인 관계등을 볼때 그는 한은이 오랜만에 맞는 중량급 총재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과거 최창락 총재 시절에도 그가 원론에서부터 풀어보려고 시도했던 한은 독립성문제에 대해 행내의 많은 기대가 있었으나 결국 눈에 띄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듯이 중량급 총재 한사람이 한은의 위상과 통화정책의 흐름을 대번에 바꾸어놓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실제로 조총재는 이날 오전 한은강당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통화량이란 마음만 먹는다고 당장에 낮추기는 어렵다』고 분명히 했고,그의 제자이자 후배교수인 측근은 『지나친 기대는 오히려 총재로서의 운신의 폭을 좁히기 쉽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의 자율화를 강조하는 고집스러운 안정론자이며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들을만큼 철저한 원칙론자인 조총재의 취임이 정치권의 외풍속에서 경제를 지켜나가야할 지금,많은 기대를 걸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의 원칙론자적인 고집은 취임일 하루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식통보를 받았음에도 아직은 총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지 못하겠다는데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인터뷰를 거절하면서도 그는 「한은총재」가 아닌 「학자」의 입장에서 『인플레 아래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경제만병의 근원은 인플레』라는 말은 빠뜨리지 않을 정도의 안정론자다. 통화가치의 안정이 설립목적이자 존재이유인 중앙은행엔 적격의 인물이라는 얘기가 나올만 하다.
조총재는 이같은 자기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는 각오가 분명히 서있는 듯하다. 본인이 직접 다 쓰다시피한 취임사의 거의 대부분을 인플레의 해악에 할애했다. 부총리를 지내고 어떻게 한은총재로 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자리의 높낮이는 전혀 문제가 안된다. 화폐금융론은 내 전공과목』이라고 응수하는 것이 그같은 일면을 엿보게 한다. 「1년짜리 총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총재직을 수락한 점도 그렇다. 결국 그는 전 부총리로서 1년5개월간의 현실행정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바닥에 깔고 물가수호자라는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부,그중에서도 한은과 가장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재무부와 부총리 출신의 총재를 맞은 한은이 앞으로 어떻게 협조해가며 통화금융 정책을 풀어나갈지 주목된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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