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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바이로이트 변경백 오페라 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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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로이트 하면 바그너 페스티벌이 열리는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이 떠오른다. 전세계 바그네리안의 성지(聖地)다. 하지만 정작 관광객들에게 더 인기있는 곳은 아담하지만 화려한 내부장식으로 유명한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극장이 다. 바이로이트 변경백(邊境伯) 극장.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소프라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파리넬리'(1994년)의 로케 장소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나폴리 태생의 카스트라토 카를로 브로스키(1705~1782)가 이곳 무대에 섰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파리넬리가 한참 활동하던 1748년에 개관했으니 당시 다른 곳의 궁정 오페라 극장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바그너는 59세 생일에 맞춰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정초식을 열었다. 낮에는 공사 현장에서 루드비히 2세에게 바치는'충성 행진곡'을 연주한데 이어 저녁에는 변경백 극장에서 베토벤의'합창 교향곡'을 연주했다.

변경백이란 시골 백작이라는 뜻이다. 프랑크 왕국과 신성로마제국에서 군사 요충지인 변경에 설치한 관직이다. 지방 행정조직이지만 대공과 백작의 중간 위치에 해당하는 봉건 제후로서 그 지역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바이로이트는 1806년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해 바이에른의 영토가 되기 전까지는 베를린을 수도로 한 프로이센에 더 가까웠다.

바이로이트 변경백 극장은 1748년 바이로이트의 엘리자베스 프리데리케 소피(1732~1780) 공주와 뷔르템베르크 공작 칼 오이겐 2세의 결혼식에 맞춰 개관했다. 소피 공주의 어머니이자 바이로이트 변경백의 아내인 마르그라비네 빌헬미네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의 누나다. 직접 오페라 작곡은 물론 대본까지 썼다. 1737년부터 바이로이트 궁정 오페라 감독을 맡았다.

작곡가 출신 왕비의'작품'

프로이센의 소피아 도로테아 왕비는 딸 빌헬미네가 자기 사촌인 프레드릭 영국 왕자와 결혼하길 원했다. 하지만 영국 측에서는 프로이센의 왕이 동의하지 않는데 굳이 결혼을 제의할 생각이 없었다. 빌헬미네는 1731년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 변경백과 결혼했다. 아버지의 협박에 못이겨 굴복한 것이다. 남자 시종과 동성애를 즐기다가 결국 국경을 넘어 영국행을 시도했던 남동생 프리드리히 2세의 형벌을 가볍게 해주는 조건이었다. 빌헬미네는 남동생 프리드리히 2세를 끔찍히도 아겼다.

빌헬미네는 바이로이트로 시집와서 처음엔 행복했다. 하지만 남편이 도로테아 폰 바르비츠와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부부 사이에는 금이 가고 말았다. 변경백의 처남인 프리드리히 대제는 매부와 불륜을 저지른 도로테아를 몹시 미워했다.

1735년 빌헬미나의 남편이 변경백을 계승하자 이들 부부는 바이로이트를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의 축소판으로 만들기로 했다. 여름 별장 에르미타주와 오페라 극장을 지었다. 에르랑엔 대학도 창설했다. 바이로이트의 대표적인 건물과 공원이 이때 만들어졌다. 바이로이트 궁정은 얼마 못가서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전투에서 중립을 지켜 남동생 프리드리히 2세가 섭섭해 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빌헬미나는 바이로이트에서 죽을 때까지 남부 독일의 정세를 남동생에게 빠짐없이 보고했다. 1758년 10월 14일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은 프레드리히 대제가 호크키르크 전투에서 레오폴트 요제프 그라프 다운이 이끄는 오스트리아 군대를 격파하던 날이었다. 빌헬미네의 10주기 되던 해 프리드리히 대제는 포츠담 상수시 궁전에'우정의 사원'을 지어 누이를 추모했다.

빌헬미네는 뛰어난 작곡가이자 류트 연주자, 음악 후원자였다. 류트 연주자 베른하르트 요아힘 하겐을 궁정 악사로 데리고 있었다. 오페라'아르게노레'를 작곡해 1740년 남편 생일 때 축하곡으로 연주했다. 그녀의 실내악 작품은 지금도 악보가 남아 있다. 1748년부터 프랑스어로 회고록을 집필했는데 원본이 베를린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독일어, 영어판으로도 번역 출간됐다.

바이로이트 변경백 극장은 공주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것은 물론 빌헬미네 자신의 작품을 상연하기 위한 무대였다. 빌헬미네의 외동딸 엘리자베트 프리데리케 소피는 자코모 카사노바가'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말했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520석 규모…개관 당시 독일 최대의 오페라 극장

바로크 시대의 극장 건축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알려진 이 극장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됐고 2009년 공식 승인될 예정이다. 뮌헨의 궁정극장 쿠빌리에 극장(1753년 개관)과는 달리 전쟁 통에도 건물이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돼 있다. 내부가 목재로 돼 있는데도 화재 한 번 나지 않았다. 무대 깊이는 현재 20.5m로 줄이긴 했지만 개관 때에는 27m로 당시 독일 최대 규모의 오페라 극장이었다.

1748년 9월 27일 소피 공주의 결혼식 날 요한 하세의 오페라 '에지오'로 문을 연 이 극장은 이탈리아 볼로냐 코뮤날레 극장으로 유명한 갈리 비비에나 가문의 주제페와 카를로 형제가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실내 장식을 꾸몄다. 비비에나 형제의 작품과 바이로이트 궁정 극장 건축에 관한 모델 등 자료는 노이에 슐로스(Neues Schloss)에 전시돼 있다.

건물이 더 잘 보이게 하고 마차 세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주변 가옥 세 채를 헐어냈다. 외부는 볼품없지만 내부는 무척 화려하다. 벤야민 뮬러가 천장 벽화'아폴로와 아홉 명의 뮤즈신'을 그렸다. 3층 규모의 발코니석은 종(鐘) 모양을 닮았다. 발코니석 한쪽에는 변경백의 입장을 알려 참석자 모두가 일어서도록 하기 위해 나팔수석도 마련했다.

2층 발코니석 중앙 로열 박스에는 'PRO FRIEDERICO ET SOPHIA/ IOSEPHUS GALLUS BIBIENA FECIT/ ANO DOMI MDCCXLVIII'라고 새겨져 있다. '프레데리케 변경백과 소피 공주를 위해 주제페 갈리 비비에나가 1748년 만들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변경백 부부는 이 로열 박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거나 날씨가 추울 때만 사용했다. 로열 박스에만 난로를 지필 수 있었다. 변경백은 평소에는 무대 앞 오케스트라 피트 난간에 기대어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신하들의 모습을 구경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사실 다른 궁정 극장에는 2층 발코니석의 중앙은 물론 프로세니엄(무대 양쪽의 기둥) 옆에 로열 박스를 설치하는 게 보통이었다. 1748년 개관 공연 당시 무대에서는 연기 뿐만 아니라 만찬까지 벌어졌다. F자 모양으로 80명이 앉을 수 있는 탁자를 마련했다. F는 프리드리히 변경백의 이니셜이다. 나머지 참석자들은 1층 바닥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았다. 오페라가 상연되는 동안 관객들은 음식을 즐겼다. 결혼식, 축하 공연, 피로연이 같은 장소에 벌어진 것이다.

바이로이트 변경백 극장에는 연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 기간 중 축제극장이 공연을 쉬는 날에는 이곳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뮌헨 국립 오페라단은 매년 봄 이곳에서 오페라 발레 시즌을 연다. 2000년부터 바이로이트 바로크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 음향을 곁들인 조명 쇼가 여름엔 오전 9시15분, 겨울엔 오전 10시15분부터 45분 간격으로 열린다.

◆공식 명칭: Markgrafliches Opernhaus Bayreuth (Margravial Opera House)

◆개관: 1748년 9월 27일

◆건축가: Joseph St. Pierre(외부), Giuseppe and Carlo Galli Bibiena(내부)

◆객석수: 520석

◆부대시설: 오페라 카페(Cafe an der Oper) 화요일 쉼. www.operncafe-bayreuth.de

◆개관: 4월~9월 오전 9시~오후 6시, 10월~3월 오전 10시~오후 4시(공연 당일이나 1월 1일, 12월 24~25일, 12월 31일은 휴관).

◆입장료: 5 유로(단체 학생 4 유로, 18세 이하 무료)

◆주소: Opernstrasse 14, 95444 Bayreuth

◆전화: (09 21) 7 59 69-22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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