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IT에 담을 콘텐트 인문학 속에서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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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리쓰메이칸대의 아트 리서치 센터 1층 공연장에서 전통무용 장면을 정밀 촬영해 신체 움직임을 디지털화하는 모습.[리쓰메이칸대 제공]

"일본 전통 춤을 추는 사람의 모습을 모션 갭처 등으로 촬영해 신체 동작, 감성 정보, 뼈의 움직임 등을 세밀하게 분석한 뒤 디지털 자료로 보관하고 멀티미디어 교재로도 활용합니다."

2일 오전 일본 교토(京都)시 리쓰메이칸(立命館)대의 아트 리서치 센터(ARC)에서 만난 직원 오모토 유키에(大本幸惠.여)는 "교육에는 물론 춤추는 로봇 제작 등 비즈니스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RC는 이 대학이 13년 전부터 추진해온 '문리(文理) 융합'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 문.이과를 아우르는 통섭(統攝)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대학의 가와구치 기요부미(川口淸史.61) 총장은 "ARC는 고고학 등 인문학과 정보기술(IT)을 연계해 교토 전통문화를 디지털로 표현하는 디지털 휴머니티 사업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은 일 정부의 우수 연구 프로젝트(COE)로 뽑혀 지원을 받고 있다.

일 학계는 1996년 '문리 시너지 학회'를 설립할 정도로 일찌감치 학문 통섭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기후 변동 등 복합적인 문제를 풀려면 문.이과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대학은 이러한 문리 융합을 선도해 왔다. 교토 인근 시가(滋賀)현 구사쓰(草津)시의 비와코 구사쓰 캠퍼스(BKC)는 94년 설립될 때부터 문리 융합 학부를 개설했다.

이 캠퍼스의 경제.경영.이공 등 3개 학부가 9년 전 만든 문리 종합학부에는 '금융.정보' '환경.디자인' '서비스.경영'의 3개 학과가 있다. 문과와 이공계 지식을 합쳐 새로운 복합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다.

올해 교토 캠퍼스에 신설된 영상학부도 문리 융합 정신에 따라 '촬영기술 등 예술' '미디어 산업 등 비즈니스' '영상처리 등 기술'의 3개 학과를 만들었다. 가와구치 총장은 "디지털 기술에 담을 실용성 있는 콘텐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 150명 모집에 2600명이 지원해 17.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내년에는 이학부에 정보과학.생명과학을 융합한 생명정보학과를 신설한다. 인간의 생활 스타일과 컴퓨터 공학을 합쳐 정보통신시대의 새로운 생활문화를 연구할 계획이다. ARC나 영상학부와 같은 문리 융합 연구에는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어 실용화 가능성도 밝다.

이 대학이 문리 융합에서 특히 중점을 두는 게 인문학과 이공계의 만남이다. 일본에서도 경영학 등 실용 학문이 인기를 끌면서 인문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졸업생의 취업도 어려워지고 있다. 문과계로 출발한 이 대학은 이에 따라 인문학을 살리기 위해 ARC와 같은 인문학.이공계 학문 융합, 인문학 실용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도 유지(慈道裕治) 교양교육센터장은 "이공계에서도 윤리.생명.환경보호 등 인간의 가치 문제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철학.문학.역사 등을 종합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문학 실용화는 ARC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유서 깊은 교토 문화를 현대화하고, 일반인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이 교토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 관광사업이 활성화돼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인문학도 발전할 것이란 기대다.

이에 따라 몇 년 전부터 시 문화재를 학교가 관리하고, 주말에는 교토 문화 공개 강좌를 무료로 개설하고 있다. 올해는 도쿄(東京)에 사회교육원을 만들어 교토의 전통예술.정치.역사 등을 일반인에게 가르치는 '교토학 강좌'를 열었다. 가와구치 총장은 "문화를 디지털로 표현하는 힘이 일본의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라며 "과거에는 기업이 연구를 주도했지만 이젠 대학이 지역과 국가를 위해 앞장서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 대학은 간사이(關西) 지역 3대 사립대의 하나로 1900년 설립됐다.

교토=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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