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의펜화기행] 한양 최고 별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석파정의 옛 모습, 종이에 먹펜, 36X50cm, 2007

조선조 말 한양 최고의 별장은 자하문 밖 '삼계동정자(三溪洞亭子)'였습니다. 인왕산 수려한 계곡에 차일을 친 듯 넓게 퍼진 소나무를 중심으로 안채. 사랑채.별당에 정자가 4개나 있어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답니다.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별장으로, 현대루(玄對樓)란 사랑채에 월천정(月泉亭)과 육모정(六茅亭), 그 외에도 청국 기술자가 벽돌로 지은 사랑채 부속 건물과 동판으로 지붕을 올린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楓樓)'란 이국풍의 작고 예쁜 정자가 있었습니다.

현재의 석파정. 정원수 뒤쪽에는 청나라 기술자가 지은 이국풍의 벽돌 건물이 있었다.

김흥근이 정성 들여 가꾼 삼계동정자를 대원군이 빼앗습니다. 김흥근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임금의 아버지가 정사에 참여하면 안된다'며 대원군을 배척합니다. 결국 권력을 잡은 대원군은 미운털이 박힌 김흥근에게 "삼계동정자를 사겠다"고 합니다. 김흥근이 거절하자 "하루만 빌려 달라"고 청합니다. 김흥근은 마지못해 허락합니다. 정자를 빌린 대원군은 고종을 불러 하룻밤 묵도록 합니다. 왕이 묵은 곳에 신하가 살 수 없는 법이라 삼계동정자는 결국 대원군의 수중에 들어갑니다.

대원군은 삼계동 별장에서 바라보는 북악산과 북한산의 바위 모양을 따서 자신의 아호를 '석파(石波)'라 짓고 별장 이름을 '석파정'으로 바꿉니다. 이후 대원군의 후손에게 물려오다 남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1958년 서예가 손재형이 벽돌로 정교하게 지은 사랑채 부속 건물을 매입해 계곡 아래 홍지동 125번지로 옮겨 놓습니다. 지금은 '석파랑'이란 식당의 별채가 되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부채 관계로 소송이 걸려 있는 석파정을 나라에서 사들여 없어진 건물도 복원하고 새로 가꾸면 1만여 평이 넘는 도심 속의 명소가 될 것입니다.

김영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