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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학대받는 주부에 숙식제공·기술교육 『가출여성 피난처』까진 등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결혼6년째인 주부 이모씨(34)는 지난달 남편의 상습적인 구타에 못 이겨 5세 된 딸을 데리고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씨의 남편(34)은 평소 술에 취하면 시비를 걸어 아내가 실신할 때까지 때리는 이상성격자.
집에서 도망치기 전날 밤은 남편이 머리채를 잡고 벽에 머리를 쳐 박는 바람에 기절했다가 다음날 깨어나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어린 딸과 함께 가출을 결행했다. 옷가지 몇 개만 달랑 챙겨 집을 나섰으나 갈곳이 막막했다.
그래서 이씨가 찾은 곳이 현재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학대받는 여성의 긴급피난처」 인 서울 외 발산동 자매복지회관.
가정부로라도 취직하기 위해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서울시립부녀회관을 찾았다가 부녀회관직원의 안내로 복지회관에 들어갔다.
서울시의 위탁으로 사회복지법인 「은강회」가 운영하는 이 회관은 원래 미혼모·부랑부녀들을 일시 보호키 위해 건립된 시설. 그러나 90년 들어 남편의 폭행을 피해 가출한 여성들이 하나둘 찾아와 보호를 요청하자 회관측은 이들을 미혼모 등과 함께 수용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수용인원 인명 중 30명이 매맞고 집을 뛰쳐나온 주부들.
이같이 주객이 뒤바뀌자 정부는 지난1일 이 회관을 「학대받는 여성의 긴급피난처」로 공식 지정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올해 중 전국 15개시·도에 학대받는 여성들을 일시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를 1개소씩 신설할 계획이다.
남성의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면서 정부가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여성문제를 상담하는 「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직접 사무실을 찾아와 면담을 요청한 건수는 4백43건.
상담내용별로는 남편의 구타로 고민하는 주부가57%(2백51건)로 가장 많았고 ▲남편의 외도 10%(46건) ▲강간 9%(40건) ▲부부갈등 8%(37건) ▲소송 등 법률문제 7%(31건) ▲시집갈등 5%(22건) 등의 순 이었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이므로 가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가정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도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남편의 폭력으로 피해를 본 아내를 국가가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자매복지회관 방호선원장(80)의 주장이다.
지난 한해동안 이 회관에 수용된 부녀자 1백70명 중45%가 남편의 구타 등 가정불화로 집을 나온 주부들. 이들 중 80%는 1∼2주생활 한 후 원장·상담실 등의 주선으로 남편과 화해, 가정으로 돌아갔고 일부 주부들은 2∼3개월씩 남아 양재·미용·컴퓨터·홈패션 등의 기술을 익혀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있다.
숙식·기술교육 등은 무료로 제공된다.
2개월 전에 이곳에 들어와 미용과 기계자수를 배우고 있는 유모씨(36)는 『남편의 상습구타에 못 이겨 여러 번 집을 나왔지만 경제적 자립능력이 없어 다시 남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며『자수기술을 익힌 후 취업해 자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전화」가 87년부터 운영하는 「쉼터」또한 학대받는 여성들의 피신처다. 지난 한해동안 73명이 거쳐갔고 현재 7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 2개 피신처의 운영상특징은 남성의 추적(?)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소재지를 비밀에 부치고 있는 점. 때문에 부인이 원하지 않는 한 남편은 부인을 만날 수 없다.
『과거 우리사회는 남편의 폭력을 남성의 권리행사쯤으로 여기고 방치, 여성들은 인권사각지대에서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여성의 전화」관계자는 『정부가 뒤늦게나마 학대받는 여성에게까지 눈을 돌린 것은 여성의 권익신장을 위해서도 지극히 바람직스러운 일』이라고 평했다. <양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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