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잔재 청산이 통일밑거름-반 민족문제연 「식민지배 청산문제의…」심포지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연구가 우리사회를 구속해온 식민잔재의 청산, 나아가 최대의 청산과제로 남겨진 민족분단의 극복차원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일제청산문제를 연구해온 민간단체인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주최로 27일 오전11시 흥사단강단에서 열릴 심포지엄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는 이 같은 최근의 연구를 집약하는 자리로 주목된다. 연구소는 친일파연구로 유명했던 재야사학자 고 임종국씨의 뜻을 기려 지난해 2월 설립된 단체로 『지나간 역사로서의 일제통치가 아니라 현재역사로서의 식민유제를 평가하고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취지에서 행사를 마련했다.
행사에 앞서 제출된 심포지엄의 주제발표 논문들은 한결같이 『통일이 가시화 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식민잔재, 특히 친일파문제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정리가 없이는 진정한 민족화합의 통일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강만길교수(고려대)는 「일제침략전쟁의 성격과 그 피해」라는 발제문에서 『분단자체가 식민지배의 미청산이기에 현시점에서 식민지배청산의 문제를 재조명하는 것은 민족 재통일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불가결한 밑거름』이라고 전제한다. 강교수는 이어 식민지배의 피해를 ▲역사적으로 근대화를 가로막아 정치적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를 차단했으며 ▲경제적으로 자율적 산업혁명의 기회를 박탈했고 ▲사회적으로 계급적 대립을 심화, 민족분열을 초래했고 ▲문화적으로 민족주체성과 자존심을 훼손했다고 정리한다. 예컨대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기간 중 일본정부로부터 4억6천만엔의 지원을 받고 26억 7천만엔을 지원했다는 통계는 재정적인 면에서 투자의 5·7배를 착취해 갔다는 증거다.
강교수는 이 같은 침탈의 후유증을 반민족적 정치세력의 확대, 반민족적 경제세력의 확대, 한반도분단 등 세 가지로 대별한다. 식민지배상태에서 득세한 친일적·반민족적 정치세력이 해방 후 청산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고, 역시 친일적 예속자본으로 자라온 반민족적 자본도 살아남아 민족분단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서중석교수(성균관대)는 「친일파의 존재양태와 구조적 성격」이란 발표문에서 『제국주의강국이 우리의 역사를 파행으로 몰고간 외부적 원인이라면 친일파는 제국주의 침략에 협조·부응함으로써 식민지배와 분단을 초래한 내부적 원인』이라며 강교수의 논지에 동의한다.
서교수는 『친일파문제가 역사속의 치부로 남지않고 오늘까지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친일파가 해방 후 역사의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며 연구대상으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친일파는 해방 후 우리사회의 지배층속에 편입돼 극우반공 이데올로기에 편승, 분단체제를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서교수는 『친일파란 단순히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사람』이라고 규정, 친일파에 해당하는 대표적 집단을 ▲3·1운동이전 일제의 식민체제 구축에 공헌한 일본유학생 등 친일관료 ▲일제 보호하에서 근대화를 주장한 일진회 등 단체 ▲3·1운동이후 민족분열정책으로 성장한 친일자본가와 친미파 기독교지도자 ▲친일논리를 앞장서 부르짖은 민족개량론자 ▲고등문관 합격자 등 고위관료와 경찰·헌병 등 하급관리 ▲일본육사와 만주 군 출신으로 친일적인 사람 등을 예시한다.
이들 친일파들이 해방 후 반탁운동을 계기로 애국자로 변신, 이후 친일파문제는 「공산당을 때려잡기 위해 거론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가 된 채 아직까지 청산되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
한편 이 같은 일제잔재의 청산과 관련, 발제자인 박영재교수(연세대)는 『일본은 2차 대전패배이후 지금까지 미국에 의해 타율적으로 부가된 전후체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해왔다』며『따라서 타율성을 벗어나게 된 일본의 재등장을 대비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강력한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