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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바꾼 리더십 ① 김종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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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일 경기도 안산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실습실을 찾은 김종현 이사장(中)과 송기선 교장(가운뎃줄 오른쪽에서 둘째)이 학생들과 한데 어우러져 활짝 웃고 있다.김형수 기자

비전을 가진 한 사람의 리더가 세상을 바꾼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 학교다. 리더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초.중.고.대학에서도 학교의 환경을 바꾸고 경쟁력을 불어넣는 교육자들이 있다. 이들의 리더십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수된다. 새로운 미래의 리더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학교에 새바람을 이르킨 리더십의 현장을 찾아가 본다.

경기도 안산시 와동에 있는 한국디지털미디어고 교사들은 요즘 '공부 중'이다. 2일 오후 9시 기자는 학교 교무실을 찾았다. 상업 담당 신철식 교사 등 6명이 영어책과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잘 가르치려면 공부해야지요. 영어회화 테이프를 자주 듣다 보니 이제 귀가 뚫리는 것 같네요." 신 교사의 말에는 의욕이 묻어났다.

교사들만의 '야간자율학습'은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박주현 교무부장은 "지난해 7월부터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교육과정을 개발하거나 부족한 실력을 보충하는 등 공부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25명의 교사 중 4명은 3월부터 야간 대학원을 다니며 실력을 다지고 있다.

교사들이 '공부하는 스승'으로 바뀌자 학생들도 생기가 넘쳤다. 3학년 이정섭군은 "입학할 때만 해도 선생님이나 학생 모두 '실업고인데'라며 공부에 큰 열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군은 "지금은 모두가 해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느낌"이라고 말했다. 2학년 김태우군은 "인문계고보다 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한국디지털미디어고가 새로운 학교로 거듭나고 있다. 2002년 수도권 소재 H대 교수가 정보기술(IT) 특성화고교로 설립한 이 학교는 3년 전까지만 해도 '문제 학교'였다. 무자격 교사 임명, 교사 채용 시 금품 수수 등 학교 운영 비리가 터지고 신입생조차 모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벤처기업가인 김종현(46) 이사장이 학교를 인수한 직후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올해는 입학 경쟁률이 3대1을 훌쩍 넘었다. 특히 올해 119명의 졸업생 중 93명이 고려대.연세대.한국항공대 등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문제학교가 명문고로 탈바꿈한 데는 김 이사장의 리더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 학교를 바꾼 이사장=김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교사들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5년 내 국사.국어를 제외한 전 교과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라고 했다. IT 담당 교사들은 관련 국제 자격증을 매년 두 개씩 따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퇴출'시키겠다고 했다. 교사들은 술렁였다.

김 이사장은 "IT 분야는 중국.일본에 샌드위치가 된 한국 산업의 살길이고, 글로벌 인재를 키우려면 영어 실력이 필수"라며 교사들을 독려했다.

김 이사장은 교사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매일 학교를 찾았다. 학교에 이사장실이 있지만 손님을 맞을 때나 교사들과 회의할 때가 아니면 행정실 한쪽에서 학교 일을 챙겼다. 권위를 버린 것이다.

김 이사장은 또 미국 25개 고교와 대학을 직접 방문해 선진 '교육 모델'을 연구했다.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필라델피아 흑인 거주지에 세운 '미래 학교(School of the Future)'가 대표적이다.

귀국 후 그는 투자에 나섰다. 사재 11억원을 학교법인에 기부했다. 우수 교사와 시설에 대한 투자는 우수 학생 유치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프로그래밍.웹디자인.인터넷방송 관련 실습실과 정보기술문화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기숙사와 강의실도 추가로 건축 중이며, 2009년까지 학급당 학생 수를 25명(현재 35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 교사들 움직이다=망설이던 교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과 함께 발로 뛰며 경기도교육청의 '전문교과 동아리 지원금', 중소기업청의 '청소년창업교육학교 지원금' 등을 따냈다. 그 결과 아이디어가 뛰어난 교내 벤처 동아리 7개를 선발해 학기당 50만~100만원의 활동비를 지원하게 됐다. 교사들은 유학반을 만들고 프로그램 개발에도 나섰다. 방과 후 지도와 야간 공부도 자청했다. 김 이사장은 유학반 지원을 위해 서울 선린인터넷고 '유학반' 신화를 이끌었던 IBM의 IT컨설턴트 하인철 박사를 영입했다. 3학년 김모군은 "선생님들이 달라지자 오후 10시 이후엔 썰렁했던 기숙사 자습실이 자정이 넘어도 꽉 찬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jhim@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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