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함께 호흡산 나의 분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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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5년간 연재되어온 『늘푸른 소나무』가 19일(일부지방 20일)대미를 이루었다.
작가 김원일씨가 작품의 의도와 소감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87년3월부터 『늘푸른 소나무』연재를 시작했으니 꼬박 다섯해를 보낸 셈이다. 그동안 나는 줄곧 절망의 한 시대와 현재의 시간과 힘든 싸움을 벌였다. 일본의 조선강점기를 배경으로 그 수난의 시대를 자료더미와 함께 추체험한 나날이었고, 날마다 꼬박꼬박 여섯장의 원고지 칸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이제 이 긴 소설은 나로부터 떠났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맞춤이다.
마지막회를 쓰며 나는 예정대로 주인공 석주율을 끝내 저격의 현장으로 몰아넣었다. 다섯해동안 호습을 함께 해왔던 분신을 쓰러뜨리는 아픔에 나는 한동안 전율했고, 그날밤 눈 내리는 거리를 혼자 떠돌며 통음했다. 그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독자들의 힐책을 배신하며 그를 사지로 내몬 뒤 그 죽음의 상징성이 무엇이냐는 자문에는 나 역시 허탈했다. 물론 그의 죽음이 현실적으로는 힘없는 자의 패배로 인정되겠지만 보다 큰 뜻으로 한 순결한 영혼이 죽음으로 이룰수 있는 승리라는 확신은 가졌으나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나는 이 소설을 착수할 때 역사의 기록과 민중사에 충실하기보다는 한인간의 정신적 성장과정을 꼼꼼하게 기술해보겠다는 의도를 더 앞세웠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성장소설, 또는 교양소설적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일제 강제통치 35년, 그 절망의 시대를 나는 예수가 살았던 유대 땅이나 간디가 살다 떠난 영국 지배하의 인도를 늘 연상했다. 그 시대의 수탈과 폭정을 통해 피압박민족이 겪어야하는 슬픔을 헤아리는 한편, 심성이 유약한 한 인간이 현실과 이상에 눈뜨는 과정을 추적했다.
나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쉼없이 육체적 고통을 겪게 했고, 그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이 세계가 폭력이 없는 사랑으로 순치되기를 기원했다. 인간과 인간사이에 사람의 베풂으로 넘치는 세계란 이 지상에서 이루기 힘든 이상론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좇아 자신을 부단히 정화해가며 실천하는 자가 있다면 그 바보스러운 금욕주의자가 걷는 가시밭길이야말로 순연한 영혼의 도정이라 할만하다. 이 이기주의시대에 나는 돈키호테처럼 그런 자를 따라 다녔다.
이 소설은 주제와 형식이 새롭지도 않고 주인공 또한 독창적인 인물이랄 수도 없다. 그러나 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니 먼 훗날일지라도 우리가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질문인 인간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의 문제는 소설의 보편적인 주제가 아닐수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주인공과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며 그 길을 찾아 모색했다. 자아의 각성이 단독자의 깨달음에 그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위해 열려질 때만이 그 깨달음의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깨달음과 실천이 한 성과에 도달하기 전에 나는 그 뜻을 좌절시켰다. 늘 그렇듯 사악한 현실이 그 뜻을 꺾었으나 진정한 매장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는 거짓과 진실의 상투 속에 발전하는 것이다.
이제와 돌이켜 보건대 뜻은 좋았으나 역시 역량의 부족을 통감했다. 반성은 따르지만 나로서는 성실을 다했으니 할말이 없다. 완성에 이르기까지 묵묵히 기다려준 중앙일보독자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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