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193 - 미망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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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세대 여성들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자신이 먼저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다고 합니다.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서 여성들이 그만큼 강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젊은 남성들이 화장을 하고 귀고리 등으로 치장하게 된 것은 이렇게 강해진 여자들에게서 선택받기 위한 안간힘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성의 영향력 확대는 언어에도 반영돼 영어의 경우 남성 중심의 용어를 중성적인 용어로 바꾸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가 자주 쓰는 '미망인(未亡人)'이란 말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단어는 '남편이 죽었으니 마땅히 따라 죽어야 함에도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순장 제도가 시행되던 시대라면 몰라도 지금 그런 여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말은 '춘추좌씨전'에 몇 번 등장하는데 모두 남편이 죽은 후 그 부인이 자신을 지칭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여성 스스로가 이 말을 사용한다면 홀로 된 여성이 자신을 낮춰 말하는 겸양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쓰면 매우 무례한 말이 됩니다. 그 경우 "당신 남편이 죽었는데 당신은 왜 따라 죽지 않는가"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업무 중 사망한 동료의 미망인'이나 '고(故) ○○○회장의 미망인' 같은 글에서의 '미망인'은 '부인'으로 고쳐 쓰면 무난할 것입니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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