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남궁원|군복 잘 어울리는 미남스타|임영(영화 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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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남궁원 배우(1934년생)는 현재 배우협회 제12대 회장이다. 그는 동양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훤칠한 키에 윤곽이 뚜렷한 용모, 굵고 남성적인 목소리를 무기로 약 4백 편에 출연한 한국의 대표적 배우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출연한 대표작으로『순교자』(65년·유현목감독), 『첫 경험』(70년·황혜미감독), 『전쟁과인간』(71년·신상옥감독), 『다정다한』(73년·최하원감독) 등을 든다.
사실『순교자』에서 그의 늠름하면서도 철학적인 육군대위 역은 원작자 김은국의 숨김없는 분신으로 이야기 전체를 엮어나가는 중요한 배역이어서 그를 단숨에 요지부동의 스타덤에 올려놓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의 군목 모습이 하도 잘 어울린 그는 그후 많은 전쟁영화에 군인 역으로 출연한다.
그 중에는 007 제임스 본드 액션영화 등으로 유명한 테렌스 영 감독의『인천』(82년·Inchon)에서 로렌스 올리비에, 재클린비셋, 벤 가자라, 삼선민랑 등과 공연하기도 했다. 이 당시 인천 상륙작전 장면은 이탈리아의 나폴리항만 근처에서 찍었다. 그는 한국배우들 중에선 얼마 안 되는, 영어를 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이때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다이얼로그코치가 있어 일일이 말하기 쉽게 가르쳐주어 매우 편리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기회만 있으면 외국영화에 자꾸 출연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제작당시 온 세계(?)가 떠들썩했던 한미합작영화『인천』은 문선명씨의 통일교가 제작하고 흥행적으로는 크게 실패한 것이라고 미국 간행의 영화백과사전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남궁원으로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는 견지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는다.
그가 지금도 대표적 출연작으로 생각하는『첫 경험』은 김지미·윤정희와 공연한 유부남 삼각관계러브 스토리였다. 여류신인감독 황혜미의 데뷔작이었던 이 영화는 그해 백상상 신인감독상을 탔다.
황혜미는 그 당시 미국에서 돌아와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후『슬픈 꽃잎이 질 때』(71년), 『관계』(72년)등 세편을 만들고 나서는 영화계를 떠난 것 같다.
남궁원은『그 밤이 다시 오면』(58년·노비감독)으로 데뷔했다. 제작자 이재명씨는 친구의 아버지였다. 노필감독은『안창남비행사』(49년)로 데뷔했으나 전쟁으로 작업을 중단했다가 근 10년만에 다시 연출하는 제2작이었다. 이때 남궁원은 어머니가 병석에 있었는데 자신이 번 돈으로 치료비를 대겠다는 생각으로 첫 출연했다. 그후엔 신 필름에 전속되어『로맨스 빠빠』(60년·신상옥감독), 『이 생명 다하도록』(60년·신상옥감독)등에 출연하여 연기자로서의 경력을 구축해간다.
이 당시만 해도 여배우들과 키스하는 장면에선 담뱃갑 껍데기 파라핀으로 입술을 싸놓고 조심조심 키스한답시고 했었다.
간첩 액션영화『하얀 까마귀 』(67년·정진우 감독)를 진해 앞 바다에서 찍을 때는 특수효과용 TNT폭약이 바로 앞에서 잘못 터져 얼굴·어깨에 50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기도 했었다. 이때는 조감독 한 명·특수효과담당 한명이 즉사하고 4 명이 중상을 입었다. 간첩으로 특수선박을 타고 몰래 침투하다 해군경비함정에 발각되어 포격 당하는 장면이었다. 4개 설치한 TNT폭약 중 3개는 예정된 시간과 해상에서 효과를 잘 내며 터졌지만 그중 한개가 조작을 잘못해 바로 앞에서 폭발했던 것이다.
해군 군의관들이 비상 출동하여 응급치료를 하고 세브란스병원으로 급송되어 수술을 받았다. 신문에도 크게 났었다.
그 동안 대종상 주연상·조연상을 비롯, 아시아영화제 주연상등 상도 심심찮게 탔다. 그러나 그런 것은 개인적인 일이고 지금 배우협회장이랍시고 자리에 앉고 보니 너무 많은 동료들이 궁핍하게 지내고있어서 가슴아프다. 배우협회 등록회원 1천2백명 중 현역으로 뛰는 회원은 고작 1백명이나 될까. 다른 회원들은 거의 모두 가난하다. 배우들이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얼굴이 팔려 있어 특히 비참한 꼴을 보이게 되고는 한다. 배우협회장 임기 중 반드시 부분적으로나마 구제책을 마련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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