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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자의 종가음식 기행 ③ 강원도 강릉 연일 정씨 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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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마을에 자리한 연일 정씨 정응경(鄭鷹慶) 종가. 이곳에서는 지금은 잊혀져 가는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을 지켜가고 있다. 강릉 대도호부사를 지냈던 정응경이 집을 앉힌 후 빠지지 않고 행해 온 450년 전통의 행사다. 해마다 음력 3월 길한 날을 잡아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성주신과 음식맛을 관장하는 부엌의 조왕신, 재산을 지키는 지신에게 떡과 정화수를 올려놓고 가족들의 편안함을 기원한다. 유교문화 중심의 종가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대관령 산줄기가 학이 날개를 편 듯해 붙여진 학산마을, 야트막한 둔덕 대숲에 자리한 종가. 3년 전 세상을 떠난 15대 종손 정의윤의 빈자리를 종부 남진온(66)씨가 지키고 있다. 구순을 훌쩍 넘긴 시어머니 앞에선 아직도 내림 음식을 배우는 새댁같이 다소곳하다.

"제가 시집왔을 때는 1년에 제사 8번 외에도 계절마다 고사를 지냈습니다. 대문에 금줄을 치고 깨끗한 황토를 마당에 뿌린 후 떡을 쪄서 해가 질 무렵에 지냅니다. 자손 번창과 오곡 풍년을 기원하고 가축들의 전염병까지 염려하는 축문도 수백 년 전 그대로입니다. 우리 집 고사는 신을 대접하는 의미뿐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 덕을 베푸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3월 보릿고개가 시작되면 집안에 쌀이 떨어져 끼니를 잇지 못하는 집이 많았거든요. 그들에게 나눠주는 고사떡은 배고픔을 면해 주는 고마운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종가 뒤뜰 장독에는 쌀 한 섬의 떡을 찔 수 있는 시루가 여러 개 쌓여 있다. 다락의 성주단지는 쌀 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한 달은 버틸 양식이 저장돼 있다.

농경시대가 아닌 지금에도 가문의 전통인 고사 지내기를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 "하루에도 교통사고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가족들의 안녕을 비는 가신고사는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거든요."

이 집의 내림음식은 책면과 꽃떡이다. "책면은 오미자를 우려 꿀을 탄 뒤 녹말가루로 만든 국수를 띄운 음료입니다. 과음한 다음날 사랑채 손님들의 숙취를 풀어 주는 상큼한 음료죠. 꽃떡은 며느리나 사위를 맞을 때 차려내는 큰상에 반드시 올랐던 메뉴죠. 꽃떡 솜씨는 아직도 시어머니를 따르지 못합니다. 우리 집 앞뜰에 피는 봄꽃 지단화, 여름꽃 맨드라미와 쑥을 뜯어 말린 후 가루로 만들었다가 찹쌀가루에 3색 꽃물을 들여 만든 꽃떡 모양이 곶감 같아 우리 집에선 '곶감떡'이라고 부릅니다."

남씨는 책면과 꽃떡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며 음력 3월에 지낼 고사상도 장독대에 차려서 볼 수 있게 해 줬다. 사과.대추.밤, 그리고 나물 3가지와 북어 다섯 마리, 떡 한 시루, 물 한 그릇이 전부였다.

한배달우리차문화원장 teacook@hanmail.net

■ 꽃떡(재료 4인분)

.재료=찹쌀가루 1컵 반, 멥쌀가루 반 컵, 쑥가루 1/2 작은술, 지단화가루 1/2 작은술, 맨드라미가루 1/2 작은술, 물 2큰술, 꿀 2큰술, 밤 6개, 곶감 1개, 대추 3개, 석이버섯, 잣가루.소금 약간씩.

①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섞어 소금 간을 한 뒤 4등분으로 나눈다. ②밤을 삶아 꿀을 넣어 이기고, 곶감.대추.석이버섯도 채를 썬다. ③쌀가루에 준비한 꽃가루와 쑥가루를 섞어 찬물에 반죽을 한다. 흰색은 그대로 반죽한다. ④두 가지 반죽을 밤톨만큼 떼어 태극의 반 모양으로 빚어 맞붙인 다음 화전 지지듯 지진다. 가운데에 밤 고명을 올린다. 나머지 두 가지 반죽도 태극 모양으로 만들어 맞붙여 지진 뒤 밤 고명 위에 올려서 다시 한번 앞뒤로 살짝 지져낸다. ⑤꿀에 담갔다가 그릇에 담을 땐 석이버섯과 대추채.곶감채.잣가루 등을 올려 모양을 낸다.

■ 책면(재료 4인분)

.재료=오미자 반 컵, 물 5컵, 꿀 5큰술, 잣 1큰술, 녹말반죽(녹두.녹말 2큰술, 물 4큰술)

①오미자는 잘 씻어서 체에 건진 후 찬물에 하룻밤 우린다(오미자를 끓이면 색이 곱지 않고 신맛이 강하다).②오미자 우린 물에 꿀을 넣어 단맛을 낸다. ③녹두.녹말을 되지 않게 반죽해 스테인리스 국그릇 밑에 얇게 편 다음 끓는 물 위에서 돌려 가며 익힌다. ④녹말이 투명하게 되면 꺼내 찬물에 담갔다가 수저 끝으로 가장자리를 돌려서 꺼낸다. 5㎜ 두께로 길게 썰어 오미자국에 넣은 다음 통잣을 띄운다.

이연자 한배달우리차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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