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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해결 동시행동 美서도 긍정적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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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대 국제문제센터(소장 박한식 교수)주관으로 10∼13일 열린 북한 핵문제 포럼은 일종의 '트랙2 회의'(정부·학계 관계자들의 비공식·비공개 회의 방식)다.

특히 그동안 3자·6자회담을 뒤에서 총괄해온 외무성 조성주 북미국장이 단장으로서 직접 방미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만큼 6자회담과 관련, 북한 측이 적극적이라는 인상이다. 미국에서도 행정부 인사는 없었지만 커트 웰던 하원 군사예산분과위원장(공화)이 참석했다. 상원의 대북정책을 좌우한다는 리처드 루가 의원(외교위원장)과 조셉 바이든 의원(외교위 민주당 간사)은 수석보좌관들을 보내 미국 측 입장을 대변했다.

조약이 아니라도 가능=포럼의 가장 큰 이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방콕에서 "서면을 통한 안전보장도 가능하다"는 발언의 진정한 배경과 실천 여부였다. 북한 대표단은 이에 대해 환영의사를 보였지만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문제 때문에 일단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다 재선 이후에 표변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행정부 독단의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며 북핵문제는 평화적·외교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미 의회의 기류를 납득시키고자 했다.

이와 관련, 그레그 전 주한대사는 "어쨌든 북한 측은 이 조약이 아니라도 '서면 안전보장과 이에 대한 의회 동의'에 대해 수용의사를 거듭 밝힌 것은 향후 6자회담의 첫 단추가 원만하게 풀려갈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회담의 형식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향후 전망을 밝게 하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의회의 동의방법과 관련, 웰던 하원의원은 "법적 효력을 가지는 합동결의안(Joint Resolution)은 3분의 2 동의가 필요하고 6자회담의 성격과도 맞지 않는 측면이 있어 대신에 상·하원에서 각각 과반수 표결로 이뤄지는 공동결의안을 제시했다"며 이에 대해 북한 측도 긍정적 입장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거부감 없어진 동시행동원칙=동시행동원칙은 지난 6자회담에서 북한 측이 주장한 것. 상대에게 먼저 요구사안을 조건으로 내밀기보다 양측이 합의내용을 일괄적으로 함께 이행하자는 취지다.

이에 반해 미국 측은 핵프로그램 동결이나 농축우라늄 폐기 또는 NPT 복귀 등을 전제로 요구하는 단계별 이행방안을 선호해왔다.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행 여부를 검증할 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 포럼에서 미국 참가자들은 각종 사안이 얽혀 있는 북·미관계 해결에는 동시행동원칙이 적절한 방법론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여기에다 지난달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이 그동안 거부감을 보여온 동시행동 원칙에 대해 나름대로 긍정적 입장을 보여온 것을 감안하면, 향후 6자회담의 형식이 일괄 타결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입장차이는 있었지만 북한 인권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의회 관계자들은 "현재 미 행정부·의회 내 강경파나 미국민 여론을 감안하면 어떤 형태로든 인권문제에 대한 접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북측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도 재미 일본인을 강제수용하지 않았느냐. 지금 북·미관계는 준전시 상황이다. 큰 틀이 해결되면 그러한 사안들은 저절로 해결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례적인 공동 발표=이번 포럼은 비공개로 이뤄졌지만 회담 종료 후 양측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 폐막식을 열었다. 북한측의 반대로 공동발표문을 채택하지는 못했지만, '주최 측 회담 요약문' 은 발표됐다. 요약문은 ▶6자회담은 동시행동원칙에 입각한 포괄적 협상으로 이뤄져야 하고▶북의 핵개발 폐기와 동시에 북에 대한 안전보장▶다자체제를 기반으로 하되 북·미 양자간 관심사안을 우선 논의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번 포럼을 총괄한 박한식 교수는 "모두 공개하지는 못하지만 6자회담을 앞두고 양측이 견해 차이를 충분히 좁힐 만큼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고 토의내용이 미 행정부에 곧 전달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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