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피아노 도장공 김옥봉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영창악기 피아노 도장부의 김옥봉씨(48)는 피아노 칠만 23년간 해온 전문가다.
수성염료만 쓰던 피아노 칠 분야에 유성안료를 도입했으며 피아노가 검은색 일색이던 71년 최초로 채색 피아노를 만든 선구자인 그는 지난해 한국 산업인력 관리공단에 의해 이 분야최고의 명장으로 뽑혔다.
한양대공대를 중퇴하고 24세에 기능공으로 출발한 그가 지금의 전문가가 된 과정은 낙후된 우리 나라 칠계의 현실을 하나하나 몸으로 부닥쳐 뚫고 나가는 힘겨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지난 68년 영창악기에 공원으로 입사할 때부터 자신이 일할 부서로 피아노 도장부를 택했다.
도장을 배워두면 어떤 회사, 어느 분야에서든 필요한 기능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도장일은 고되고 더러운 일이었다.
작업복은 칠의 더께가 앉아 아예 검은 색으로 변했고 목욕을 해도 손톱 밑의 까만 도료와 냄새는 계속 남았다.
신나 냄새를 하루종일 맡다보면 머리가 어릿어릿 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선배 기능공들은 『나 하는대로 따라하라』고 할뿐이어서 기술은 어깨너머로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프레이 칠을 할 때 목재와의 거리, 칠하는 시간, 칠의 분사각도 등을 표준화해 나가는 한편 도료가 늘 일정한 특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회사 기술부와 함께 연구하고 토의해 나갔다.
70년 당시 기술제휴사였던 일본 야마하사에 3개월간 연수를 다녀온 그는 붓 칠에 까만색 수성염료만 쓰던 국내 피아노 도장계에 스프레이를 이용한 유성안료 컬러 도장기법을 도입해 71년 야마하사에 수출하기도 했다.
사내 도장 과정 연수를 1기생으로 마친 그는 이 분야의 1인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도장기술협회나 도료 메이커의 세미나 발표회 등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공부를 계속했으나 실무에서 참고할 서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틈나는 대로 본사 연구실의 이론과 자신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피아노 도장과 관련된 교육자료를 책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는 『한국 도장기술협회가 지난 87년에야 비로소 활성화될 만큼 도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기술은 뒤떨어져 있다』면서 『학문과 현장의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방안이 빨리 강구되고 현장 실무진에서 배우고 공부할 수 있게 우리 실정에 맞는 서적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천 영창악기 제2공장의 피아노 도장부원 2백60명을 지휘하는 기장(과장에 해당)인 그는 『화려하지 못한 분야에서도 성실하게 전문가의 길을 걷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현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