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선진화 좌우할 주권의식/4대선거 성패,국민손에 달렸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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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근자에 들어 정치가 사회 모든 분야의 발전을 선도하기는 커녕 도리어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넓혀온게 사실이다. 국내외 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거기에 대처해야할 정치권의 역할이 큰데 비해 실질적인 기여는 여전히 기대이하의 수준이라는 뜻인듯 하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정치는 그 나라,그 국민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거울임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정치만 멀찌감치 뒤처져 있다는 주장은 정치의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는 있을지언정 진실을 대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십보 백보의 차이를 놓고 서로 책임이나 전가하고 있을 만큼 지금 우리의 사정은 한가하지 않다. 우리는 4대선거를 바로 목전에 두고 있다. 정치의 선진화도,리더십의 질적 개선도,세대교체도 더이상 남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시험대에 온 국민이 함께 서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권자들의 올바른 주권의식과 권리행사야말로 우리 정치의 향방을 가늠할 결정적 열쇠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주권의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비록 짧은 헌정사이지만 적지않은 비정상적인 정치행태를 경험했으며 아직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나쁜줄 알면서 답습해온 관행과 해악이 검증된 사례들을 과감히 단절,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주권의식을 되찾는 첫번째 요건이다.
우리의 정치엔 왜 불가측성이 높은가,정치가 자격없는 소수에 의해 독과점되고 유권자는 정치기술자들에 의해 볼모로 잡히는 형국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등등. 몇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금세 해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들을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무책임하게 방치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거의 막다른 골목에서나 느낄 수 있는 좌절감을 정치로부터 받고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좌절감은 거의 혐오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해 있다. 중앙일보의 「신정치지도자의 자질과 역할」여론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도대체 선거의 해를 맞아 67.2%가 대통령감이 없다고 생각하고,48.2%가 지지정당을 차지 못하고 있다면 정당과 정치인들은 무엇을 해왔단 말인가. 이런 상태에서 마지못해 선택한 지도자가 국가를 이끌어가고,국민들이 정치를 냉소하는 것은 비극적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고리는 여기서 끊어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미루고 기다릴 이유가 없다. 정치를 이 지경으로 만든데는 유권자들의 책임 역시 크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병은 결코 무지몽매한데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본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을 유권자의 특권인양 당연시해온 적은 없는가. 입으로는 진보와 자유를 외치면서 정치행위는 기득권의 집착에 기울어 결정하지 않았던가,의식은 적극적인체 하면서 행동은 소극적이어서 기권을 다반사로 하지 않았는가.
오늘날 우리의 선거풍토가 혼탁하고 원칙을 잃고 만 것은 정치인 또는 출마자들이 유권자들의 이같은 약점을 철저히 악용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남이 물을 때는 인물·능력본위로 투표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표를 찍을때는 금력·지연·학연·혈연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정치꾼들은 잘 알고있다.
출마자들의 오도된 확신과 유권자들의 허위의식이 투표결과에 의해 깨지지 않는한 불법·탈법·금권선거가 계속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런 상태에서 건전한 정당정치가 성장할리 만무하다. 게다가 지지할만한 정당을 못찾고 있는 유권자들이 점점 기권의 대열에 서고 있음이 작년 지자제선거에서 목격되었다. 만약 이런 추세가 금년의 4대선거에도 되풀이된다면 우리의 정당정치는 또 다른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우리는 특히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와 불신증대를 심각하게 우려하며 이들이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표로써 참여해줄 것을 고대한다. 그래도 그들은 기존정치의 부패에 덜 물들고,더개혁적이라고 믿고 싶기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안정을 내세우며 기득권수호에 집착하는 여당을 어떻게 볼 것인지,무책임하고 대안없는 야당의 비판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란 결국 사회의 합리화 과정이고 안정된 개혁은 투표를 통해서만이 제값을 다할 수 있다. 유권자들의 주권의식이 깨어있고 투표권이 엄정하게 행사되는 사회에서는 정치의 불신도,과열도 파고들 틈이 없다. 바로 그곳을 향해 우리는 눈을 똑바로 뜨고 열심히 뛰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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