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1부] 여름(18)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그림=김태헌

나는 "여인숙이 뭐야?" 하고 물었다. "맙소사. 여인숙이 뭐냐구? … 그건 그러니까 말하자면…, 창밖에 말이야 벌판 같은 데 불빛 하나 없고 바람이 불어. 그런데 나지막하고 허름한 모텔이 있는 거야. 아주 후지지. 창틈으로 바람은 새어 들어오고 비도 뿌리는데. 겨우 먼 길을 걸어와 누운 거야. 아침부터 먹은 거라곤 배낭 속에 들은 딱딱한 빵 한 덩이뿐이고, 해진 신발 틈으로 물이 새고 침낭은 낡고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 뭐 이런 거 말이야 그때 올려다본 천장의 어둠은 얼마나 서늘하겠니…."

엄마의 단점은 이처럼 난데없이 자기감정에 도취되어 소설에 쓰는 문장을 말로 해대는 것이다. "아니 그 뜻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여인숙이 뭐냐구? 몰라 나 지금 바빠. 학원 가는 중이야" 하고 대답하자 엄마는 서운한 기색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 안에서 생생해졌다. 이상하다. 어떤 말들은 들을 때는 참 좋다가도 금방 잊어버리거나 곧 시들해지고 마는데 어떤 말들은 시큰둥하게 들었더라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밤이면 책상 서랍 깊숙이 든 생일 카드처럼 꺼내보게 된다.

레오 생각이 났다. 내가 뉴질랜드에 두고 온 고양이. 윤이 나는 짧은 갈색 털을 갖고 있던 고양이. 아빠로부터 도망칠 때 가방 속에 넣어서라도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던 레오. 나중에 뉴질랜드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아빠에게 묻자 아빠는 "응 옆집 솔이네 주고 왔다"라고 쉽게 대답해버렸다. 나중에 내가 솔이한테 메신저로 물어보자 솔이는 "언니 레오 잘 있어"라고만 대답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벌면 꼭 다시 뉴질랜드로 가서 레오를 데려와야지, 했던 결심을 마지막으로 다졌던 게 언제였더라. 사람은 정말 이렇게 이기적인 동물일까. 그때는 레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는데 이렇게 자리에 누워 레오 생각을 하는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내 자신을 향해 "넌 나쁜 아이야" 하면서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그건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거야." 엄마라면 또 그렇게 말할까?

엄마를 다시 만난 후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아마 태양계의 행성에서 난데없는 왜소행성으로 변한 명왕성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명왕성이 생각을 할 수 있는 유기체라면 그는 인간들이 "명왕성은 행성 아님" 선언을 하고 영어로는 난쟁이 행성이라는 보통명사를 붙여준 것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질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아빠 식으로 말하자면 그건 탈락이고 엄마 식으로 말하자면 그건 명왕성의 자유일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이제 사람들이 붙여놓은 딱지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그냥 별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 거꾸로 말하면 그는 그냥 자신이 꿈꾸는 그 별이 되어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로 말하자면, 엄마를 만난 후 비로소 그냥 나일 수 있었다. 엄마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불행했지만 스스로는 불행하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구절처럼 "행복한 집은 고만고만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집은 가지가지로 불행하다"라는 말은 그러고 보니 틀린 것 같았다. 행복도 불행도 가지가지다, 가 더 맞는 것 같았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처럼 그렇게 스스로 행복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아빠의 결혼식장에서 피아노를 치는 어린 시절로 나는 돌아가 있었다. 아빠 옆에는 흰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서 있었다. 곰탱과 꽁지 두 사람은 서로를 아주 사랑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팝 가수들처럼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그런데 꿈속에서도 나는 그 두 사람이 곧 이혼하고 결별하여 서로 평생을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빠가 너무 행복해보이고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너무 예뻐보여서 나는 울었다. 깨어나 보니 아침이었는데 내 방 창밖으로 해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흘러내린 눈물이 베개를 적신 것을 보며 나는 B시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