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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 타고 돌아본 규슈의 온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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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일본 온천이라면 효도관광뿐이라고? 단체관광 버스가 아니면 다닐 수가 없다고? 이 모든 편견을 깨버린 용감한 여행자들이 있다. 인터넷에서 뜻이 모인 ‘아쿠아’ 회원들이 6대의 자동차를 빌려 타고 일본 규슈를 다녀왔다. 전통미가 살아 있는 료칸도 즐겼지만, 자동차에 가족과 친지를 태우고 온천마을 곳곳을 구경했던 것이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 글 왕영호(인터넷 여행사이트 ‘아쿠아’ 편집장)

배낭 하나 달랑 짊어지고 세계를 누볐던 초창기 배낭족들이 30대를 훌쩍 넘겼다. 이제 배낭은 벗어던졌다. 이들 손에 쥐여진 것은 바퀴 달린 간편한 수트 케이스. 여행 장소, 여행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일본의 료칸도 다니고, 동남아의 풀빌라도 즐긴다. 물론 합리적인 가격을 따지고, 정보를 교환하느라 머리를 맞댄다. 그래서 모인 이들이 아쿠아(aq.co.kr) 회원들. 왕영호씨라는 여행 마니아를 가이드 삼아 문화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그들만의 ‘자유 여행’을 실행하고 있다. 이번에 회원 30명이 렌터카 6대를 나눠 타고 일본 규슈의 온천 지역을 3박4일 동안 말 그대로 누볐다. 이들의 여행은 일본 온천마을에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회원들이 자기 가족들을 태우고 쪼로록 달려가는 모습이며, 한꺼번에 한국 사람 여럿이 전통 료칸에 나눠 묵고 온천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드문 풍경이었던 셈. 이들의 별난 여행 이야기를 왕영호씨가 전해왔다. <편집자>

여행을 하다 보면 ‘함께했으면 더 좋았을’ 그 누군가가 생각난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내 경우는 아쿠아 회원들이 떠오르곤 한다. 지난해 11월의 규슈 여행이 그랬다. 렌터카로 규슈의 서정적인 시골길을 달리고 전통 료칸을 경험해 보면서 회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 것이다.

일본 규슈, 그것도 유후인과 구로카와를 잇는 코스, 게다가 료칸을 숙소로 이용하는 여행은 내가 경험한 어떤 여행보다 자동차와 찰떡궁합으로 보였다. 물론 언어 문제(내비게이터와 거리 표지판도 거의 일본어 일색이다)와 차량 진행방향과 운전석이 우리와 반대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놓여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료칸이 가진 ‘푹 쉬는 여행’이라는 성격과 자동차가 가지는 ‘이동의 자유’라는 장점이 섞일 때 아름다운 여행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드라이브 규슈 앤 인조이 료칸’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올해 1월 15일 나의 여행 기획을 아쿠아에 올렸다. 당초 20명 미만이던 예상 인원은 30명으로 늘어났다. 출발일은 3월 8일. 참가자들은 미리 모여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작전을 짰다. 항공과 렌터카는 규슈지역 료칸 상품을 취급하는 규슈로(www.kyushu.or.kr)에서 맡아 진행해주기로 했다. 숙소는 개인 취향에 따라 선택했다. 이동은 같이하되 숙소는 달리하며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방식이 ‘아쿠아’답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니폰 렌터카(www.nipponrentcar.co.jp)에서 차를 빌렸다. 1500cc급에 내비게이션 포마, 주유비와 소비세 포함 등 3박4일 이용 요금이 한 대에 2만7100엔이었다. 단체 예약이어서 30% 이상 할인받았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우리의 코스인 후쿠오카-유후인-구로카와-후쿠오카를 간다면 1인당 8000엔 정도 든다. 여행 재미도 느끼며 절약까지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물론 차를 몰며 긴장도 많이 했다. 경험 많은 규슈로의 이규진 사장이 선두를, 내가 후미를 맡았다. 도로에 접어들면서 다른 차량과 섞여 서로 떨어지기도 했다. 익숙지 않은 도로 환경이라 접촉사고가 날까도 걱정이었다. 작전은 되도록 주행선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가자는 것이었지만 서행하는 트럭이나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가끔 추월도 해야 했다. 그러나 진행 방향과 추월 방향이 다르니 운전자들이 혼돈을 겪기도 했다. 깜박이를 켜야 하는데 윈도 브러시가 움직이는 식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고속도로에 접어든 지 30분 만에 톨게이트를 나가 ‘도수(Tosu)’라는 아웃렛도 들렀다. 전열도 정비하고 유후인에 도착하기 전 식사도 하고 쇼핑도 했다. 도수부터 유후인까지는 운전자들이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유후인 긴린코 호수 인근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한 뒤 우리는 서로를 축하했다.

유후인에서 우리는 철저히 자유시간을 즐겼다. 유후인 2박 동안 1박씩 숙소를 옮기는 사람도 있었고, 차로 유후인 전역을 돌며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틀 뒤 우리는 또 다른 온천마을 구로카와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이미 차량이 많지 않은 국도에서 운전하는 것은 편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구로카와까지는 유후인 외곽에서 11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가 442번 국도만 타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비와 안개 때문에 전망대에서 활화산인 아소산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지만 아소 지역의 특별한 경치를 보며 드라이브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는 아소시의 식당에서 다양한 재료를 꼬치에 꽂아 숯불로 구워 먹기도 하고, 구로카와 근처에서는 유명한 애플파이집에도 들렀다. 구로카와에서만큼은 우리는 같은 숙소에 함께 묵었다. 연회룸에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여행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왔다. 구로카와에서 바로 공항으로 이동하면 되는 단순한 코스였지만, 우리는 일찍 후쿠오카에 도착해 쇼핑몰을 돌아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오전에는 구로카와에서 마지막 온천을 즐긴 뒤 오전 11시30분 출발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바로 붙어 있는 유후인과 달리 구로카와는 고속도로 입구인 히타까지 80km 정도 떨어져 있다. 꽤 오랜 시간 국도를 달려야 했다. 중간에 온천마을 쓰에타테를 들르기도 하고, 계곡 사이를 달리는 코스에서는 경치 구경도 실컷 했다.

마지막에 들른 마리노아 시티 쇼핑몰에서 주차장이 혼잡해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걸린 것, 렌터카를 반납하면서 차량 한 대의 앞 범퍼가 약간 긁힌 것 등은 잠시 우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러나 같이 간 모든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고, 렌터카 회사가 양해해주어 별 문제없이 해결됐다. 차량을 반환할 때 계기판을 보니 440km를 주행한 것으로 나왔다. 우리는 이 은색 차를 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갔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왜 직접 여행사를 운영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진다는 것 자체가 소심한 A형인 나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다. 그래도 차를 빌려 떠나는 공동 여행은 조만간 또 한번 시도할 생각이다.

6월에는 렌터카로 발리를 한 바퀴 돌 계획이다. 가칭이지만 여행 제목은 ‘드라이브 발리, 인조이 네이처’이다.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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