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할아버지 농구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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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생을 즐길 나이인 백발의 할아버지가 손자뻘의 중학생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농구코트를 누빈다.
인천 송도중 농구부코치 전규삼씨(77).
농구명문 송도고 농구팀을29년간 맡으며 이충희·강동희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만들어낸 전씨는 89년3월부터 고교팀을 제자에게 물러주고 중학농구부를 지도하고 있다.
현역코치로는 국내 최고령인 희수의 전씨는 농구계 인사뿐 아니라 학부형·제자들에까지도 「코치선생님」이 아닌 「할아버지」로 불린다.
『늙은 사람한테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좋지요. 부담이 없고 애칭이기도 하지요.』 전씨는 지난 60년 송도고 코치를 맡은이래 30년이 넘게 한눈 한번 팔지 않고 한 학교에서 외길인생을 걸어왔다.
그는 일본 법정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 모교인 송도고에서 47년부터 공민교사로 재직하다가 고교시절 농구선수로 뛴게 인연이 돼 전공과는 거리가 먼 농구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40세가 넘어 농구 지도자로 변신한 그에게 처음에는 코치자격문제가 시비거리였지만 송도고 농구팀이 각종 대회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또 한편으로 국가 대표급 선수들이 여럿 배출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까지 길러낸 선수는 줄잡아 2백여 명.
유희형(KBS해설위원) 서상철(산업은행감독) 김인진(산업은행차장) 김동광(기업은행감독) 이충희(현대) 강동희(기아) 정덕화(기아) 김지홍(현대) 서동철(상무) 등 대표급 선수들이 그의 「아이들」인 것이다.
학교측에서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를 들어 사퇴를 강요, 전씨가 『그렇다면 이제 그만 두겠다』며 학교에 나오지 않자 학부모 졸업생들이 들고나섰다. 항의농성·진정이 잇따르자 학교측이 이를 백지화시켰고 전씨도 없던 일로 하기로 해 사태가 겨우 수습됐다.
전씨는 이 파문이 있은 다음해 2월 『학교측이 좋아하지 않는걸 알면서 왜 연연하겠느냐』며 학교를 그만 뒀다.
전씨는 송도고를 나온 직후 송도중으로부터 『학생을 키워달라』는 권유를 받고 다시 농구코트에 복귀했다.
송도중 농구팀은 올해 봄·가을 전국 중·고 농구연맹전에서 모두 3위를 차지했다.
전씨는 국내 어느 코치보다 기본기에 역점을 두고 선수들을 길러온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기본기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신념은 당장의 승리를 좇아 변칙적인 승부수를 다투어 만들어내는 풍토를 철저히 외면했다고 제자인 김진태씨(45·송도중 교사)는 말했다.
그가 또 평생을 고집스레 지켜온 훈련방식은 드리블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패스로만 연결해 상대팀 골문으로 돌진하는 속공방식.
수비에서도 그는 지역방어가 아닌 철저한 대인방어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키 작은 슛 깡이 이충희선수가 몸을 뒤로 젖히며 슛하는 것도 전씨의 지도로 다듬어졌다.
『충희는 다부진 데가 있었어요. 중2때 동급생 4명은 게임에 출전하고 충희만 빠졌었지요. 그랬더니 겨울에도 새벽 다섯 시면 혼자 나와 슛 연습을 하고 밤중에도 9시, 10시까지 공을 던지는 거였어요 . 3학년 때는 시합에 나갔고 그때 대회를 휩쓸었습니다.
농구부 학생들에게 그는 농구 못지 않게 학과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농구는 30세면 코트에서 떠나게 되지요 . 따라서 학과실력도 있어야 되고 그보다 먼저사람이 돼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남 송도중 농구부 학생들은 그래서 시합이 있는 날에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성적표가 나오면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칭찬이나 꾸중을 듣는다.
전씨는 슬하에 친자식은 없지만 「자식 복」이 많은 사람이다. 농구계의 굵직굵직한 스타들이 자식이고 어린 제자들은 다 손자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유희형씨 등 제자 20여명이 송도고체육관에서 스승의 날 잔치를 베물어 전씨를 즐겁게 했고 86년10월 송도고 개교 80주년을 맞아 현·퇴역 제자들이 모두 모여 인천시립실내체육관에서 「보은」의 농구대잔치를 벌여 스승의 가르침에 보답했다.
기라성 같은 농구스타들이 모인 이날 농구대잔치는 회갑·고희 때마다 제자들의 간청에도 불구, 훌쩍 집을 떠나버렸던 전씨의 회갑·고희연을 대신한 것이었다.
전씨의 제자들 중에는 친자식처럼 돌봐준 스승의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
유희형씨는 『중학교 때 낡은 농구화만 신고 나오는 나를 보고 몰래 새 농구화를 여러 번 사주신 선생님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했고, 김동광씨는 『어머니의 임원비를 고등학교 때 뿐 아니라 고려대에 다닐 때에도 선생님께서 내주셨다』며 『선생님은 부모와 다름없다』고 했다.
또 최동진씨는 『동두천에서 온 나를 중학 3년 동안 댁에서 먹여주고 재워주셨다』며 『그 고마움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씨는 『선생님에게 선물을 사가거나 식사대접이라도 할라치면 「너희들이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며 단호하게 물리치신다』며 『선생님의 고집 때문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자식」「손자」들과 지내다보면 너무 시간이 빨리 지나가 늙는 것도 모르겠다는 「농구코트의 대부」전씨는 오늘도 코트에 들어서며 나이를 잊는다. <이형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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