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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자서 방어자로/옐친의 앞날(소 공동체시대:3)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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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정계 기반약해 늘 불안/경제난 못풀면 쌓아논 인기도 “물거품”
과거 7년에 가까운 기간중 소련을 이끌어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자리에 전혀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 들어섰다.
건설기능공출신으로 한때 고르바초프 대통령으로부터 「주제넘은 야심의 소유자」로 조롱받았던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승리자로 올라선 것이다.
이제 옐친 대통령은 작게는 러시아공화국을,크게는 독립국가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서게 됐다.
옐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의해 지난 88년 2월 모스크바시 당서기장에서 축출된 것을 계기로 소지도자로 부상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가 오늘에 이른것은 독자적 국가경영능력을 인정받아서라고는 말할 수 없다.
크렘린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각공화국의 반감에 따르는 반사적 이익에 의지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도전의 시절이었다면 앞으로는 축성과 수성의 위치에 놓인 것이다.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에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나 옐친대통령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가 녹록하지 않다.
우선 러시아공화국의 지도자로서 그의 권력기반이 든든하다고 할 수 없다.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의 숨은 산파로 알려진 겐나디 부르불리스부총리,비서실장 유리 페트로프등 그의 핵심측근들이 모두 예카테린부르크 출신이다.
옐친대통령이 이처럼 자신의 고향출신 인물들만을 측근에 두고있다는 얘기는 결국 그가 정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는 반증이다.
옐친 대통령은 쉽게 얘기해 대중정치인이다. 모스크바 중앙정계에서의 경력조차 일천해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축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의 이같은 처지가 지난 6월 대통령선거에서는 여러 세력들의 지지를 끌어들이는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같이 성향이 엇갈리는 세력들은 옐친 대통령 정권이 일관된 행정력을 발휘하는데는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의 지지세력은 크게 세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알렉산드르 루츠코이부통령이 이끄는 보수파,역사학자 유리아파나셰프가 중심인 「민주러시아」파,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 전대통령고문이 이끄는 「민주개혁운동」파 등이다.
이들은 개혁정책 등에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해 옐친정권의 개혁정책을 벌써부터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들어 옐친정권은 최근 민주러시아파에 기울었고 내년부터 가격자유화를 단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브릴 포포프 모스크바시장과 루츠코이 부통령이 기업민영화를 우선 실시해야한다며 사임의사를 밝히는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것과는 별개로 아나톨리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과 아파나셰프 민주러시아공동의장은 옐친 대통령의 강권정치를 비판하면서 이른바 예카테린부르크 출신 측근들의 전횡에 항의하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내년 1월부터 가격자유화를 실시하면 인플레,생활난에 따라 국민의 불만이 폭발할 것으로 보여 옐친대통령 특장의 대중적 인기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독립국가공동체 역시 옐친 대통령의 지도력을 시험대위에 올려놓기는 마찬가지다.
독립국가공동체는 유럽공동체(EC)와 달리 단일국가의 분해과정에서 오는 문제점이나 줄여보자는 성격이 강하다. 출발부터 협력적이기보다 대립적이며 공화국이기주의가 팽배하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경우 이슬람권의 공동체참여자체에 회의적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그들과의 공동체로는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는 입장이며 내심 EC에 더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처럼 생산기반과 정치구조가 낙후돼 시장경제로의 단계적 이행을 강조하는 중앙아시아 이슬람권과 급진개혁을 시도해야할 필요성이 큰 슬라브권의 갈등은 공동체의 앞날을 어둡게하고 있다.
군사문제에서도 슬라브권,특히 우크라이나는 가급적 통합군의 규모나 범위를 줄여 완전한 독립을 예비하자는 입장이나 이슬람권은 그렇지 않다.
옐친 대통령은 이같이 출발부터 불안한 독립국가공동체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러시아공화국 자체가 공동체내 이슬람·슬라브문화권의 이해상충을 그대로 축소시켜놓은 것과 같은 이슬람·아시아계소수민족문제를 안고 있다. 다시말해 독립국가공동체의 실패는 곧 1백30여민족과 16개 자치공화국으로 구성된 러시아공화국의 재분열을 촉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옐친 대통령은 지금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맞고 있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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