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청빈의 복음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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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크리스마스는 하느님이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세상으로 내려오신 날이다.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는 바로 신의 인간화를 뜻한다.
성탄절이 기독교의 축일로부터 전세계적인 인류의 명절로 발전한데는 여러가지 역사적·문화적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론 성탄에 내포된 이같은 숭고한 뜻에 인류의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인간이다. 하느님도 인간을 그와같은 완전한 존재로 만들기위해 인간 스스로가 설정한 하나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할때 「하느님의 형상」을 닮도록 했고 그 구체적인 전형으로서 이 세상에 온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은 성탄메시지를 통해 『우리 교회는 지난 10년동안 신자수가 배로 느는 눈부신 양적 발전을 보였으나 지금 참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크리스천들이 사랑과 청빈같은 복음적 가치들을 증거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쉬워 했다.
성탄절을 맞아 오늘의 우리 현실이 새삼 되새겨봐야할 절실한 복음은 「청빈과 사랑」이다. 하느님이 자신의 대행자로 이 지상에 내려보낸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고간 많은 행적과 「말씀」중에서도 이 두가지를 우리가 각별히 절실한 사회적 복음으로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아주 간단 명료하다.
예수의 탄생은 인간의 가치가 지나친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복음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먹고 살만큼」의 일용할 양식만을 요구한다.
오늘의 우리사회가 지나친 물욕과 과소비의 중병을 앓고 있는 것도 청빈의 복음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또 풍요로운 사회속에서 양산되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피폐한 도시빈민과 실업자,가출청소년들이 바로 소외된 사람들이다.
산업사회가 확대,발전해가면서 인간이 거대한 사회기구의 윤활유나 부속품으로 변해가고 있는 전반적인 인간의 「소외」도 시급한 구원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신이 사람으로 태어난 사실에 새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신과 인간이 동격임을 알리는 성탄은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기쁜 소식이었고 인류의 축복이었다.
교회안보다도 교회밖에서 먹고 마시는 과소비적 성탄명절의 탈선과 세속화가 근래 많이 정화돼가고 있긴하다. 올해도 비교적 차분한 성탄의 밤을 보내리라고 한다. 성탄절에 밤새워 술마시고 춤추는 광란도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고 있고 산타클로스를 백화점 돈벌이수단으로 내세우는 「그리스도의 상업주의화」도 시들해졌다.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을 일깨워준 거룩한 성탄의 의미는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헌신과 더불어 살고 있는 공동체를 가꾸는 훈훈한 체온으로 다시 육화하는 기쁨을 보여줄 때 「구주 오셨네」의 참뜻이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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