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물나는 난장판 국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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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리당략이 맞으면 은근짜로 야합하고 이문이 뒤틀리면 시정잡배처럼 악다구니 싸움판이나 벌이는 것이 우리의 국회상이란 말인가. 18일 폐회된 금년도 정기국회의 막바지 몇 장면을 지켜보면서 알게 모르게 이같은 혐오가 번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여야는 불과 며칠전 선거구를 늘리고 세금에서 돈 떼어 가르는 법안을 오순도순 통과시켰다. 이런 불공평이 어디 있느냐는 무소속 출마자의 항변과,뭘 했다고 우리의 세금에서 4백%나 올려 삼키느냐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있었지만 『그까짓것,욕 한번 먹고 말지』라는 배짱으로 맞섰다.
정파의 이익이 있는 곳엔 강배짱의 의기투합이 쉽게 되나 보다.그 틈에 진짜 「돈 안드는 선거」를 하도록 선거법을 고쳐봤으면 하는 국민들의 바람은 실종되고 말았다. 이래도 되는가
유력한 출전선수들이 시합때마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경기규칙을 만들어서 하는 시합을 관전자들이 어떤 심사로 구경하겠는가.
비상식의 의정난맥은 줄줄이 이어졌다. 이른바 날치기통과와 폭력저지­. 적당히 설득·타협하는 척 하다가 어느 순간 힘으로 변칙처리하는 여당의 고질과,논리적 심의와 국민에 대한 설득보다는 극한 투쟁과 선명경쟁으로 국민의 지지를 구하려는 야당의 생존전략이 존속되는한 우리의 의회정치에 희망을 걸기 어렵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여당의 날치기와 어느 의원의 말처럼 야당의 「진치기」수법이 더욱 가증스럽고 포악해가는 점이다. 18일밤 벼수매동의안·제주개발법·바르게 살기운동육성법 통과에서 나타난 작태는 13대국회의 구조적 병폐와 우리 국회의 수준을 압축해 표출한 것이었다.
국회의장이 의장석을 쫓겨나 안경이 깨지는 가운데 허겁지겁 날치기 통과를 선포하고,이 무렵 법적 권한이 없는 야당의원 보좌관들이 떼지어 국회의장·의원·장관들에게 폭언,폭행을 했다.
도대체 3당통합으로 거여가 된 민자당은 국회에서 수차례 법안날치기 통과를 감행한 것외에 구체적으로 남긴 업적이 무엇인가. 특히 벼수매동외안이에 제주개발법·바르게살기법까지 이런 식으로 날치기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문과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민자당은 몇몇 쟁점법안의 날치기에 치중한 나머지 꼭 처리해야할 중요한 법안을 놓친 어리석음을 범했다. UR에 대비,농업구조조정을 뒷받침할 관계법 다섯개가 고스란히 폐기될 운명에 놓여있다. 10년간 42조원을 투입할 국가대사가 여당의 날치기전략에 희생된 것이다. 이미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사업들이 법적 뒷받침없이 표류하거나 변칙 추진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국회가 져야 한다.
그렇다고 곶감은 빼먹고,몸싸움으로 국민에게 약자에 대한 동정을 구하는 야당의 행태 역시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법안에 대한 진지한 심의에 앞서 일부 세력의 표수를 의식,투쟁부터 결정하는 야당의 전근대적 속성은 언제쯤 고쳐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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