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가입 이후의 기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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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복수노조 공무원노조 3자개입/노동계 새 쟁점 부상/국내법위배 조약비준 미룰 방침/재야단체선 법개정운동 나설듯
국제노동기구(ILO)가입은 우리 노동행정 및 노동운동에 획기적인 변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제 ILO회원국으로서 적절한 대접을 받게된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도 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ILO 가입이 가져다줄 효과는 대외적으로는 「노동분야 후진국」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씻고 노동외교를 활기차게 펴나갈 수 있다는 점이며,대내적으로는 관련 협약의 비준 및 권고의 채택 등을 통하여 노동여건의 향상을 촉진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와 노동계는 그동안 ILO가입을 한 마음으로 추진해 왔으나 사실 정부는 대외적 측면을,노동계는 대내적 측면을 상대적으로 더 고려해 가입을 희망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ILO가입 초기 정부와 노동계는 상이한 기대치로 인해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ILO 회원국이 된 이상 우리나라는 ▲ILO가 채택한 조약을 가급적 비준,이행해야 하며 ▲비준한 조약과 비준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조약에 대해서는 연차보고서를 작성,제출해야 하고 ▲분담금(회비=우리나라의 경우 내년 약1백40만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을 내야한다.
이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조약의 비준 부분이다.
ILO의 조약은 ▲인간의 기본권리 ▲고용 ▲근로조건과 사회정책 ▲사회보장 ▲노사관계 ▲여성 및 어린이의 고용 ▲노동행정 등 각 분야에 걸쳐 1백72개가 있다.
이 가운데에는 우리나라의 노동관계법과 상치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복수노조 인정등 노동자의 단결권과 관련된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3자개입과 관련된 제98호(단결권·단체교섭권) ▲공무원(교원) 노조허용과 관련된 제151호(공공부문에서의 단결권보호) 등은 복수노조금지·공무원 노조활동금지·3자개입금지등을 명시한 국내 법규에 위배된다.
노동부는 이에 따라 1백72개 협약중 현행 노동관계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시행 가능한 협약을 선별,우선 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비준한다는 계획이다.
노동부는 우선 「근로시간에 관한 조약」(제1호) 「내외국 근로자의 평등대우에 관한 조약」 (제19호) 등 몇개를 내년 상반기중 비준하고 이후 매년 비준조약 수를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의 이같은 방침은 ILO헌장이나 국제관례에 비춰 잘못된 것은 아니다.
조약비준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이며 미국(11개조약비준),일본(39개),캐나다(27개) 등도 가입이후 매년 1∼3개의 조약을 비준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노협·전교조 등 재야 노동단체들은 『단결권등에 관한 조약은 ILO의 기본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라며 노동부가 이를 비준치 않을 경우 ILO에 노동기본권 침해 등으로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불법으로 낙인찍혀온 이들 단체는 ILO가입을 합법성을 쟁취할 더없이 좋은 기회로 보고있다.
ILO집행위 직속기구인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회원국의 노동자·사용자단체 및 정부로부터 신고된 노동문제에 관해 조사·감독활동을 하며 특히 단결권 관련문제는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조사·감독에 나서기 때문에 이 문제가 국제적으로 쟁점화할 가능성은 크다.
재계에서는 ILO 가입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국내 노사관계 구도를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경총의 조직을 확대 개편키로 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재계는 단결권·관련조약등 일부 조약의 비준을 미룰 경우 미국등에서 통상압력의 빌미로 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 국제자유노조연맹(ICFTU)과 미국 해외민간투자재단(OPIC) 등에서는 복수노조 금지 등을 들어 우리나라를 「노동자 권리 탄압국」으로 못박고 국제여론을 우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이끌고 있다.
ILO가입으로 인해 원하든,원하지 않든 국내 노동상황의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고 보면 남은 것은 가급적 혼란을 피하면서 능동적으로 변화를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노·사·정이 지혜를 모으는 일이라 하겠다.<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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