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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건강진단에 꺼져가는생명/폐암선고 한길례씨 가족의 4개월투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억울한 「시한부인생」/먼저 알아낸 안세병원서 통보 안해/“이상없다”에 재검하니 폐암말기/손쓸기회 놓쳐 가족들 더욱 울분
한 환자가족의 끈질긴 집념이 형식적으로 일반 건강진단서를 발급하는 의료계의 무책임한 관행을 무너뜨렸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8일 건강진단 과정에서 폐암이 발견됐는데도 환자에게 알리지 않고 『이상이 없다』는 엉터리 건강진단서를 발급한 서울 신사동 안세병원 병원장 안동원씨(51)와 전내과과장 김경년씨(40)를 의료법 및 형법상 허위진단서 발급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이에 앞서 관할강남보건소는 8일 같은 혐의로 안병원장의 의사면허 정지를 서울시에 요청했으며 서울시는 안세병원에 대해 업무정지등 행정처분도 고려중이다.
의료분쟁사례로는 특이하게 병원장의 형사·행정처벌등 병원측의 명백한 잘못을 증명해낼 수 있었던 것은 환자 한길례씨(42·여·약사)의 남편 신경식씨(44·회사원·서울 신사동)가 4개월간 외로운 투쟁을 벌여온 결과다.
신씨의 부인 한씨가 안세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은 지난해 9월. 약사면허 경신에 필요한 건강진단서를 발부받기위해서 였다.
병원측은 검사가 끝난뒤 「이 사람은 법정전염병·결핵성제질환·나병·성병·불구폐질자가 아님을 인증함」이라고 적힌 대한의학협회서식의 건강진단서를 발부했다.
그러나 한씨는 올해초부터 팔·다리에 경련을 일으켜 6월 서울대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치유불가능한 폐암말기」선고를 받았다.
아내가 최장 6개월밖에 살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통보를 받은 신씨는 9개월전 건강진단때 정상이라고 했는데 이게무슨 날벼락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신씨가 안세병원측에 알아본 결과,방사선과 차트에는 폐암이 기록돼있었는데도 정작 내과기록차트에는 폐암소견이 전혀 있지 않았고 진단서 발부도 진단을 담당한 내과과장이 아닌 산부인과의 안병원장 명의로 된 사실을 밝혀냈다.
「검사따로,진단따로,발부따로」가 된 셈이었다.
신씨는 즉시 관할 강남 보건소에 진정서를 냈으며 병원측은 『면허경신용 서식에 열거된 해당질병에 폐암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법적 하자가 없다』고 맞섰다.
변호사 친구등 주위에서는 일반건강진단서의 병명 고지의무를 문제삼아 보았자 승산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씨는 며칠간 의료법을 샅샅이 뒤져 안세병원측의 행위가 의료법 제18조1항(담당의사가 아닌 의료인의 진단서 발급금지)·제53조1항(환자의 질병여부 고지의무)등의 위반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신씨는 그후 4개월동안 청와대·정부합동민원실·국무총리·국회의장·보사위원장·서울시 등에 진정을 냈고 서울지검에 고소장도 제출했던 것.
『돈 때문이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겁니다. 자신들이 잘못을 해놓고도 발뺌에 급급한 병원·의료계를 보고는 나도 모르는 사명감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랐습니다.』
신씨는 중3·중1 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하는 운명에 매일 눈물로 지내는 아내를 간호하며 『일찍 손을 썼으면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흥분하고 있었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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