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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만든 오페라 세계무대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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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46.사진)씨가 자신의 첫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독일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세계 오페라의 중심으로 손꼽히는 이 극장에서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연주되는 것은 1972년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이후 처음이다.

진씨의 오페라는 영국 작가이자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루이스 캐럴(1832~1989)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지휘는 켄트 나가노, 연출은 독일의 아힘 프라이어, 대본은 희곡 'M. 버터플라이'의 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이 맡았다. 바그너 전문 배우로 이름난 귀네스 존스, 세계적 메조 소프라노 제인 헨셸이 여왕.공작부인 역으로 출연한다.

또 소프라노 샐리 매슈가 앨리스 역을, 카운터테너 앤드루 와츠가 토끼 역을 맡는 등 출연배우들 면면도 눈에 띈다. 이 밖에 혼성.어린이 합창단 등 총 200여 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르는 규모 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오페라는 소설의 여덟 장면으로 구성돼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원작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14일 열린 간담회에서 진씨는 "지난주 월요일 작곡이 막 끝났다"며 "그동안 작곡한 곡에 사용한 나의 모든 어법(語法)이 총동원된 작품"이라고 이 오페라를 소개했다. 그는 "이 소설은 주제의 철학적 깊이를 단순한 동화로 재밌게 그려낸 작품"이라며 "3년 동안 작곡하면서 이 소설을 연구한 미국 수학자 마틴 가드너의 '앨리스 주석서'를 다 읽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작품 속 기발한 언어 유희도 작곡에 영감을 줬다. 주인공 앨리스와 대화하는 쥐가 "나는 아무 것도(not) 가진 것이 없어"라고 하면 앨리스가 "그럼 내가 그 매듭(knot)을 풀어줄게"라고 답하는 식이다. 이 효과를 살리기 위해 6월 30일 초연에서 오페라는 영어로 공연되고 독일어 자막이 함께 흐른다.

진씨의 작품은 초연 이후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극장에서 여섯 번 더 공연되며 2008~2009 시즌에는 미국 LA에서도 무대에 오른다. 진씨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매트릭스의 세계로 간 뒤 본 풍경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자신이 직접 꿈에서 본 장면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진씨는 서울시 교향악단과 함께 작곡가 리게티의 추모 음악회를 22, 25일 진행하기 위해 입국했다.

김호정 기자

◆ 진은숙=서울 출생. 서울대 음대 졸업. 1985년 독일 함부르크음대에 유학해 세계적인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를 사사했다. 2001년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초빙 작곡가로 위촉돼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음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2004년)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로 초빙됐다. 그의 언니는 음악평론가 진회숙(51)씨, 동생은 중앙대 진중권(44.독어독문)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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