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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불리" 교육부 믿다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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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은 지난해 6월 서울의 모 외국어고를 자퇴하고 강남의 한 학원에 다니고 있다. 내신성적이 50% 이상 반영되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에서는 외고가 불리하다고 판단해 학교를 나왔다. 그는 "지금 와서 보니 불리할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양이 자퇴할 당시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는 '외고 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김 부총리는 "2008학년도 대입부터 학생부 반영률이 50% 이상으로 높아지면 외고 학생이 절대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원격 영상시스템을 이용해 전국의 초.중.고교 학부모 1142명에게 "외고 가면 내신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건강을 염려하기도 했다.

9개월이 지난 지금 김 전 부총리의 말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잇따라 2008학년도에는 정시모집 정원의 50%를 내신과 관련 없이 수능만 잘 봐도 합격시키겠다는 대입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두 학교는 부인하지만 다분히 외고 등 특수목적고 출신 학생을 겨냥한 입시 안이다. S외고 K교사는 "특목고 학생들은 내신 비중이 작은 수시모집에 도전했는데 앞으로는 정시 모집에서도 불이익이 없을 것 같아 학생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이재용 입학처장은 "학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도 수학능력이 있는 학생을 뽑기 위해 수능성적만으로 뽑는 학생의 비율을 늘렸다고 했다.

대학들의 이런 움직임을 보면 교육부가 나서서 "외고 가지 마라" "불리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규제가 적합하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학교의 바람을 저버린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교육부는 대학이 수요자의 입장에서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교육 당국자들이 교육부의 말을 믿고 특목고를 포기한 학생.학부모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강홍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