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에 사랑을 싣고~ 가슴으로 연주하는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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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동아리에서 기타를 잘 치고, 못 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가슴, 뜨거운 열정을 가진 이라면 누구든 환영합니다. 봉사는 실력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요."
'청소년들에게 훈계 한번 잘못 했다가는 낭패 본다''청소년들은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라는 말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갈수록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건수가 증가하고 수법도 더욱 교묘해지면서 생겨난 말들이다.
한편으로 학생은'공부하는 기계'로 재탄생되고, 다른 한편으로는'범죄의 주연'으로 등장하는 청소년들.
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다가가 행복을 일궈나가는 청소년들을 만났다.
지난 5일 오후 4시 20분 송파구 삼전동 삼전종합사회복지관 지하 2평 규모의 아담한 방. 문틈으로 드럼과 기타 연주에 몰두하고 있는 교복차림의 17~18세 남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붉게 상기된 얼굴, 방안이 터져나갈 듯한 굉음.
얼핏 보기에 이들은 공부에 지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모인 학생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연주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이들은 배명고 2~3학년으로 구성된 기타동아리'소리샘'회원들.
소리샘은 1992년 학교 특별활동 기타동아리로 출발했다. 5년여 동안 학교축제 등에서 공연을 하며 실력을 뽐냈던 이들은 1997년께 학교와 담 하나를 두고 맞붙은 삼전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동아리 연습실을 마련해 주면서'봉사동아리'로 재탄생했다. 이후 인근 신아재활원과 강원도 원주에 있는 소쩍새 마을을 찾아 정기공연을 하게 됐다.
"1학년 때인 2005년 4월 처음으로 신아재활원을 찾아가 기타를 치며 생일잔치를 해 줬는데, 장애인들이 달려와 덥석 껴안고 기타를 만지고 하는 모습에 많이 무섭기도 했어요."
소리샘 회원인 김은수(18·고3)군이 처음 지체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았을 당시를 회상한 말이다.
김군은 자신의 아버지 나이 또래의 장애인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공연을 끝낸 뒤 노래방 기계를 켜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동안 두려움은 금세 사라졌다. "장애인들은 단지 우리와 조금 다를 뿐 순수함과 열정만은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김군은 길에서 장애인을 보면 선뜻 손을 잡아주는 버릇이 생겼다.
"봉사도 자꾸 하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여자 친구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었고, 해변에 앉아 기타를 치는 드라마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기타를 배우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더 좋아요."
해가 갈수록 소리샘 회원들의 봉사 영역은 확대되고 있다. 신아재활원과 소쩍새 마을을 정기적으로 찾는 것은 물론 매년 12월이 되면 복지관의 김장 담그는 일도 돕고 있다.
트럭에서 3000여 포기의 배추를 내려 복지관 5층 옥상까지 운반하는 일은 소리샘 회원들의 몫이 된지 오래다. 일손이 모자랄 때면 이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배추 속을 넣기도 한다.
하루 내내 배추운반 등의 일을 하다 보면 며칠 동안 팔 다리가 욱신거리지만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면 절로 미소가 생긴다.
또한 지난해 11월엔 종로3가 안국역에서 25명의 회원 전원이 참여해 인근 쪽방에 사는 노인들을 위해 이불을 나눠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류연덕(18·고3)군은 "추운 날씨 탓에 손에 입김을 불며 이불을 나눠주는 회원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며"그때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소리샘 회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면서 자신들의 꿈도 실현해 가고 있다. 김대홍군 등 고3학년 회원 3명은 동아리에 들어올 당시에는 기타나 음악에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2년여의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실용 음악과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 "밴드 보컬이 꿈"이라는 김 군은"추억을 만들고 싶어 들어온 '소리샘'이 이제는 내 목표를 정해 줬다"고 말했다.
왕도원(18·고3)군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교 10등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만큼 공부에도 충실하다.
소리샘 회원들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우선은 단체의 요청으로 나가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고, 자신들이 보이지 않으면 "보고 싶다"고 전화할 수 있는 이웃을 만드는 것이 바람이다. 또한 자신들이 졸업을 한 뒤에도 후배들과 함께 봉사하고, 자녀까지도 함께 찾을 수 있는 곳이 있기를 바란다.
소리샘 회원인 차인호(18·고3)군은 "지금은 학생의 신분으로 수준급의 공연을 할 수는 없지만 백발이 됐을 때도 함께 모여 기타를 잡고 이웃들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칭찬은 정중히 사양한다."우리들이 더 배우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에 어둠이 있다면 빛도 있다.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청소년 문제. 그러나 소리샘 회원들처럼 가슴에 사랑이 가득한 학생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 같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사진=프리미엄 이성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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