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영선칼럼

한국 진보, 지금은 죽어야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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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흐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유럽연합(EU) 집행부가 있는 브뤼셀을 들렀다. 인구 4억5000만 명의 유럽 25개국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EU를 꾸려나가고 있는가 하는 얘기는 역설적으로 EU의 미래가 얼마나 쉽지 않은가 하는 얘기로 들려왔다. 벨기에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고장 나 두세 시간을 기약 없이 버스에서 갇혀 유럽의 미래를 생각했다. 근대의 노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은 EU라는 세기적 실험을 통해 다시 한번 회춘해 보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봄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 죽음의 겨울을 겪어야 한다. 유럽인들이 새로 태어나 유럽 국가들의 개별 국민인 동시에 진정한 EU 시민으로 성장해 궁극적으로는 지구인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의 쇠퇴와 회춘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대통령까지 뛰어든 한국의 진보 논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논쟁이 핵심을 빗나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유연한 진보'와 '교조적 진보'의 싸움이 아니다. 21세기 한국의 진보는 세 가지 중병에서 하루빨리 회복되지 못하면 진보가 아닌 후퇴의 어두운 길을 오랫동안 걷게 될 것이다. 21세기 시대정신을 잘못 읽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선진 좌파나 우파는 더 이상 세계화 논쟁에 몰두하지 않는다. 소박한 지구화 비판에 핏대를 올리지도 않으며, 구태의연한 민족주의에 한심해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구주의와 민족주의의 배분율이라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세계화 논쟁 시대는 지나가고 복합화 논쟁 시대가 찾아온 지 오래다. 아직까지 흘러간 노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남쪽이고 북쪽이다.

한국의 진보가 고쳐야 할 두 번째 중병은 햇볕정책 콤플렉스다. 햇볕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북핵 문제에서도 햇볕정책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성과는 현재 6자회담에서 추진하고 있는 1단계인 최소한의 핵 동결을 넘을 수 없다. 햇볕정책에 기반을 둔 남북한 정상회담을 반복하더라도 21세기적 남북한 관계 건설은 불가능하다. 한반도의 7000만 그물망화를 고민하지 않는 정상 간의 회담은 경제적으로 대단히 비효율적인 일회성 큰 잔치로 지나가 버릴 것이다.

세 번째 중병은 비현실적 양극화 극복 방안이다. 유럽 진보의 기대주였던 스웨덴이나 네덜란드는 모두 기업과 노동, 생산과 분배의 보다 복합적 사고 없이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에 겸손하다. 세계 선진경제는 역동성 위에 형평성을 추진하려는 방향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서민층을 위하겠다는 동기의 참여정부 주택정책이 결과적으론 강남의 상류층을 위한 주택정책이 돼 버린 역설을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진보는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 일시적인 비아그라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인천 앞바다에 배만 들어오면' 하는 심정으로 제2의 노사모 기적을 바라서는 안 된다. 하루 살아가기 바쁜 국민들은 진보논쟁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학자들보다 훨씬 절실하게 참여정부의 민중용 정책이 결과적으론 민중의 삶을 더 낫게 만들지 못한다는 어려운 현실을 겪고 있다. 퇴보하고 있는 한국의 진보가 21세기에 더 이상 뒤로 가지 않고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로 중병과 싸워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영선 서울대·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