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별 왕자의 경제 이야기] ⑩'열공'은 충실한 경제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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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란 직업은 없어>

소금별 왕자는 용케도 이강이 별로 바쁘지 않을 때 찾아왔다. 그는 오다가다 접한 일들 가운데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들고와 이강에게 물어보고 토론을 즐기곤 했다. 이강은 그의 호기심을 내칠 수 없었고, 소왕은 무슨 얘기든 흥미있게 들었다. 자주 만나면서 둘은 더욱 친해졌고 이젠 자연스레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다.

"근데 역시 생각해 보니 기초를 좀 더 다져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묻는 건데 경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뭐야?"

"벌써 나한테 익숙해진 거야? 한마디로 설명하라고 하니 말이야."그는 웃었다. 그렇다는 뜻이었다. 이강은 남과 얘기할 때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로 하면 뭐냐'고 따지듯 물을 때가 많았다. 얼마 전 소왕이 그걸 지적해줬다. 그전까진 잘 몰랐다. 이강은 직업병의 하나인 것 같다고 둘러댔다.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을 만나면 그의 입에선 이런 말이 자주 나오곤 했다. 소왕의 지적을 받고 이강은 '쫓기듯 살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하는 조급함 때문'이라며 변명 같은 해명을 했다. 이강은 자신에게 그런 지적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란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어. 그건 마치 보는 각도에 따라 사물이 달리 보이는 다면경 같은 것이니까. 나보고 경제를 한 마디로 줄이라고 하면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말하지. 경제학적으로 보면 세상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과 그걸 사서 소비하는 사람이지. 그런데 두 종류의 사람이 따로 구분돼 있지는 않아. 학생들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면 교수는 생산자나 서비스 공급자가 되지. 그런데 그는 가르치는 일 외에는 옷을 사 입고, 외식을 하는 것과 같이 대부분 소비자의 입장이 돼. 다시 말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생산자이지만 그 외 분야에서는 소비자라는 얘기지. 생산자든 소비자든 사람은 누구나 그때의 자기 입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려고 하는데 이런 걸 경제라고 할 수 있지."

"선생님이 생산자라면 학생은 소비자네. 그러면 학생도 소비자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하는 거야?"

"학생들은 가르침을 받는 대가로 학교나 강사에 수업료를 내지. 아주 분명한 교육서비스 소비자야. 학생들이 그런 소비활동의 가치를 높이는 길은 뭘까? 선생님이 가르치는 걸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는 것이겠지. 그래야 수업료 낸 것이 아깝지 않게 되니까. 따라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경제활동을 매우 충실하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야, 그거 정말 재미있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건 경제학적으로 볼 때 아주 충실한 활동이라 이거잖아."그러면서 그는 자신도 지금은 배우는 일이 거의 전부라면 경제적으로 더욱 충실한 학생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강은 '수업료를 내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따질 수 있는 경우가 못 된다'고 했다. 수강료를 주고 받아야 경제활동의 범주에 들어오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좋았어.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 돈을 내고 배울 게. 그래야만 '가치 극대화'를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지 않겠어?

"됐습니다, 왕자님. 수강료를 낸다 해도 내가 받지 않을 것이기 여전히 경제행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은 어떤 학생보다도 이미 경제적으로 충실한 학생입니다. 저로서는 더 없이 영광이지요."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을 웃었다.

"한가지 더 재미난 얘기 해줄까? 간혹 직업란에 학생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지. 그런데 경제학적으로 따지면 이건 틀린 말이야. 좀 전에 말했듯이 학생은 교육서비스 소비자야.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쪽이지. 그러니 학생이란 직업은 없는 거야."

"학생이 직업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가정 주부는 어때? 얼마 전에 주부의 가사 활동이 얼마만큼의 노동가치를 지니는지 논란을 벌이는 기사를 신문에서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이런 질문은 그가 여러 채널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흡수하고 있다는, 경제적으로 매우 충실한 학생이라는 증거였다.

<주부도 직업이 아니지>

"주부가 직업일 수 있느냐, 이거지? 난 아니라고 봐. 주부의 일은 가족을 위해 집안일을 돌보는 것이지.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일은 어떤 대가를 기대하지 않아. 그보다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의무에 가깝지. 노동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지도 않고, 계약에 따라 누가 정해진 임금을 주는 것도 아니지. 이런 일을 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야."

"듣고 보니 너무 당연해 논란거리가 될 것 같지 않은데, 신문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뭐야?"

"세상이 달라지고 복잡해져 이혼이 잦아지면서 생긴 일이 아닐까. 이혼 때 재산을 나누면서 주부의 노동 가치를 얼마나 인정해야 하느냐가 쟁점으로 떠오른 거야.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이혼과 같은 특수 상황에서의 셈법이고, 평범한 가정의 주부를 직업으로 표현하는 것에 난 찬성하지 않아."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면서 이강은 말을 이어갔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높이기 위해 움직이지. 이혼에 처한 주부가 그동안의 가사활동을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 시각으로 보면 당연한 행위지.자신의 몫을 가능한 한 다 챙기기 위한 것이니까. 이렇게 넓은 시각에서 보면 사람들의 모든 활동을 경제행위라고 할 수 있지. 경제학은 사람들의 그런 목적, 다시 말해 가치 극대화를 도와주는 학문이고."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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