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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시장 개방 비상 '온실 속' 로펌 생존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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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5년 말 국내 로펌업계의 순위는 광장-태평양-화우 순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인 김앤장은 종합법률사무소 형태여서 대한변협이 집계한 순위에서는 제외됐다. 하지만 올해 초 로펌 순위는 화우-광장-태평양 순으로 역전됐다.

한국의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변호사업계가 몸집 불리기에 나서면서 순위 바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한.미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8차 협상에서 3단계 법률시장 개방 원칙에 합의했다.

대기업 등에서는 "시장 개방으로 보다 좋은 법률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각에선 변호사 스카우트 경쟁 등에 따른 수임비용 상승 등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몸집 불리기와 틈새시장 가속화=최근 들어 국내 로펌 간 인수합병이 한창이다. 법무법인 '충정'은 지난달 애플.지멘스 등 다국적 기업이 고객인 중견 로펌 '서울 로 그룹'을 인수합병했다.

민.형사사건 외에도 외국계 기업에 대한 법률 자문 등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서다. 중견 로펌 '한결'은 법무법인 '내일'과, '밝은미래'는 '에버그린'과 합병했다. 몸집을 불려 미국 로펌의 공세를 피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실제로 1999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독일은 상위 10위 이내 로펌 중 두 곳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영미계 로펌에 흡수됐다.

덩치를 키우거나 특화시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로펌들의 목표다. 국내 최대 규모인 '김앤장'은 최근 5년간 판검사 출신만 30여 명을 받아들였다. '김앤장' 관계자는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민.형사.행정 사건 등 송무 분야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견 로펌인 로고스는 지난해 11월 국내 로펌 중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했다.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 대한 국내 투자가 늘면서 로펌 스스로 법률 서비스의 틈새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국내 대형 로펌들은 일본의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87년부터 문호를 개방, 2005년 4월 법률시장을 전면 개방한 일본은 '규모 확대'로 상위 1~5위의 대형 로펌들이 살아남았다.

법무법인 세종의 김범수 변호사는 "미국 로펌이 와도 결국 한국 법으로 자문해야 한다"며 "한국 법에는 기존의 국내 로펌들이 월등히 우수하므로 일단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외국계 로펌의 스카우트에 대비해 소속 변호사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대응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률 서비스 개선 효과도 기대=한국외대 이장희 법대교수는 "법률 자문의 경험이 풍부한 선진 법률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며 시장 개방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이영삼 변호사는 "법률 서비스의 공급자인 변호사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객들로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내 대기업들이 미국이나 해외 로펌과 선뜻 자문계약을 맺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내 10대 대기업 법무팀의 한 관계자는 "외국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외국 로펌에 영업 비밀 등 내부 정보를 공개하기 어렵다"며 "신뢰관계가 구축된 국내 대형 로펌에 대한 선호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임료가 오히려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한변협의 용역을 받은 한국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말 "외국 로펌이 공략할 대상은 금융.기업 법무 등 고부가가치의 전문 분야로 수임료의 시장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명 변호사의 고액 스카우트가 치열해지면 수임료 상승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민동기.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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