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임희섭교수에 듣는다(일요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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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사회 끔찍한 사건 왜 빈발하나/사람죽이고도 죄의식 안갖는 어린이 도덕성 마비된 사회가 길러냈다/제몫만찾는 물신주의가 큰탈/삶의 목적이 뭔가 생각해볼때
평범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들이 빈발하고 있다.
10세 오빠가 9세 여동생을 살해하고 범죄 은폐를 위해 방화하는 비극이 현실로 나타났으며,그것이 어린 자녀 대부분이 보고 즐기는 폭력비디오·만화의 「재현」이었다는 수사결과는 부모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누가 마실지도 모를 음료수에 독극물을 풀어대는 인면수심도 흔치않게 일상을 위협한다.
밥을 굶지 않기 위해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치는 범죄따위는 요즘 세태에 차라리 동정을 살만한 옛 얘기가 돼버렸다. 인간사회의 기본질서를 받쳐주는 죄의식은 과연 마비돼 버렸는가.
사회심리를 전공하고 20년간 한국사회를 연구·강의해온 임희섭 교수(고려대·사회학)로부터 얘기를 들어본다.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너무 쉽게 일어나고 쉽게 지나가는 요즘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나가죠.
▲『신문보기가 무섭다』는 말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닙니다만 요즘들어 부쩍 자주 되뇌지 않을 수 없군요.
정말 섬뜩했던 것은 국민학생 오빠의 동생 살해사건이었습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않은 악몽이지만 사회문제를 농축시켜놓은 상징적 사건이기에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문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엄청난 죄를 짓고도 죄의식을 느끼지않는 어린이를 키워냈다는 것입니다. 『철부지 어린이가 그럴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나 비디오를 보셔서 알겠지만 수십,수백명이 몇초 간격으로 죽어나가죠. 주인공의 살인행위는 당연시되고 영웅시됩니다. 어린이라면 누구나 바로 그 주인공이 되고싶어하죠. 책임은 어른에게 있습니다. 가정교육을 못시키고,학교교육은 입시위주로 「성적」만 강조하고,나쁜 짓을 몸소 가르치는 것도 어른들이니까요.
­결국 심각해진 사회병리현상의 편린에 불과하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병의 원인진단을 부탁드려야겠네요.
▲발병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원인부터 이야기 해봅시다.
가장 크게 보자면 도덕성의 상실입니다. 재화야 없다가도 생겨날 수 있지만 한번 사라진 도덕성·윤리를 되찾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우리 사회 부도덕성의 뿌리는 전통적 가치를 모두 뒤엎을만큼 물신주의에 빠져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진것」만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된데 있습니다.
근대화도 좋지만 사람다운 삶의 터전 위에 경제성장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찾아야하며 그 바탕 위에서 도덕성을 확립하고 2세교육도 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추구해온 부도 바르게 얻어지고 배분되지 않는 것 같군요.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는 존중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부를 추구하는 노력이 사회발전의 동력이니까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부분 부러워하지만 증오하죠. 부를 탈법·편법의 산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또 대부분 사실 아닙니까. 부동산 임대·사채등 「검은 돈」을 누가 존중하겠습니까.
당연히 「일해서 잘 산다」는 당위적 규범은 무너지고 「탈법·편법해야 잘 산다」는 가치관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이같은 가치관을 지닐때 가장 쉽게 의존하는 탈법이 폭력·범죄입니다.
결국 범죄를 유혹하는 사회가 된 것이죠.
­흔히들 그같은 가치전도와 혼란상을 선진국 진입의 고비로 얘기하죠. 사회발전단계의 하나라는 말이라고 생각되는데,이는 곧 사회구조의 재편시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보다 사회학적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바로 그 문제입니다. 산업사회화되면서 계층이 세분되고 사회가 복잡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제 기능을 맡아줄 메커니즘은 작동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제 인구의 70%이상이 도시에 모여 삽니다. 대략 계층별로 나눠 보자면 화이트 칼러인 신중간계급 20%,자영업자인 구중간계급 20%,생산현장노동자 20%,농민 20%등 비슷한 세력이 병립하고 있죠. 자본가등 상류층은 2%에 불과하지만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여러 계층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셈인데,이들간의 갈등을 풀어줄 장치는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잖아요.
대표적 예가 이익집단과 정치입니다.
이익집단으로는 과거 관변으로 출발한 각종단체가 잔존해있고,이에 대항하는 급진적 단체가 급속히 성장해왔지만 어느 것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기 편향된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대변해주는 이익집단을 아직 갖지못한거죠.
정치는 어떻습니까. 오직 대권 야욕·당리당략만이 관철되지 국민의 이해는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그런데 시대는 이미 「힘에 의한 침묵」이 불가능하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이해를 조절하는 장치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직접 이해 상대방과 부딪치려고 나서죠. 쉬운 말로 『데모하면 된다』『때려 부수면 된다』는 식이죠. 세상이 시끄럽지 않을 수가 없죠.
­그럼 이제 처방을 찾아봐야겠네요. 먼저 지적하신 분배의 문제부터 얘기해 주시죠.
▲자본주의는 문제가 많은 체제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최대 강점은 스스로의 문제를 드러내고 치료할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같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땅값이 급등하고 자산소득이 폭증하는데도 불구하고 조세정책은 항상 알량한 월급쟁이 봉투만 감시하고 있습니다.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는 선진복지국가 수준이죠.
기업도 어느정도 성장하면 당연히 공개되고 대주주의 지분도 제한되어야 합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있는 재벌그룹의 증여·상속문제도 제대로 된 선진자본주의사회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성장의 과실을 전국민에게 균분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GNP의 30%로 추정되는 지하경제를 줄이고 과세를 철저히 하는등 초보적인 법질서를 잡아가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경제적 어려움에 정치적 불신까지 겹쳐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각성은 얘기할 필요도 없죠. 그밖에 언론·사법등 조절기능을 맡은 기관들도 자정노력을 통해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국민 개개인의 차원에서 해야할 일은 어떤 것일까요.
▲국민들도 「지도층 비리」만 탓하고 「구조적 문제해결」만 기다릴 수는 없죠.
문제는 결국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는데,이는 곧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가치관은 목표가치·수단가치의 두가지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삶의 목적」이라는 가치를 돈·권력만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무조건 일류·일등만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성취하는데서 보람을 찾아야죠. 곧 내면적 자아실현의 가치죠.
수단적 가치도 강조돼야합니다. 우리 사회는 편법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사회라는 것은 공공의식이 앞서는 사회입니다. 개인이기주의·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공공선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주도할때 선진사회는 가능할 것입니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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