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일본 제조업의 '국내 회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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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30년 동안 국내에 공장을 짓지 않았던 혼다는 연산 20만 대의 완성차 공장을 사이타마에 신설하기로 했다. 그 이유에 대해 혼다는 "최첨단의 생산기술을 세계에 전개하기 위해서"라 못박는다. 저연비.고출력의 신형 승용차, 하이브리드 승용차 등은 국내에서만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고도화시킨 생산기술을 세계 각지의 공장에 전파하겠다는 얘기다.

이처럼 국내공장을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 겸 기술개발의 기지로 삼고자 하는 것은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많은 중소기업도 이런 방식을 택한다. 물론 일본 내 인건비는 대단히 비싸다. 그렇지만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인건비의 비중은 줄어드는 대신 기술이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고 있다.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연구만 한다고 해서 경쟁력 있는 기술이 탄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는 제조기술과 결합할 때 비로소 경쟁력을 낳는다. 국내공장은 이 둘을 융합하는 용광로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 제조업의 '국내 회귀'가 단순히 해외로 빠져나갔던 자본이 경기가 좋아지니까 국내로 돌아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업은 수요 부족과 고비용이라는 어려운 국내 여건 속에서도 부가가치를 한 단계 높일 방법을 모색해 왔고, 그것이 지금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현실은 우려스럽다. 올해 설비투자는 거의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제조업의 설비투자는 오히려 감소할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히 경기 탓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설비투자는 구조적으로 위축돼 왔다. 중소기업의 경우는 위기 수준이다. 설비투자가 되지 않으면 사회의 장기적 활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에 대해 기업의 투자심리를 부추길 정책을 주문하는 한편 기업에 대해 신제품 개발을 독려하는 소리가 높다. 하지만 근원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얼마 전 조사차 한 중견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공식 인터뷰에서 이 기업의 간부사원은 사장의 방침이 혁신적인 원천기술의 개발에 있다며 이를 위해서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자리가 되자 넌지시 어려움을 내비쳤다. 창업주와 달리 현 사장은 생산기술을 잘 모르고 제조업에 별반 관심이 없으며, 실은 업종 전환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온 자기들에게는 현재 한국의 자본가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비슷한 얘기를 가는 곳마다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생산기술에 관심 없는 기업이 원천기술의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의 사업에서 경쟁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가가 얼마나 전망 있는 사업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차세대산업, 성장동력, 신기술 등 큰 얘기에 너무 솔깃해하는 경향이 있다. 대신에 제조 현장, 제조기술 등은 너무 쉽게 버리려 한다.

하지만 현실에 비약은 없다. 일본에서 이노베이션의 대명사로 통하는 혼다가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실을 직시한다"는 삼현(三現)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혼다는 생산과 연구를 융합하기 위해 연구소의 톱을 생산책임자로, 생산책임자를 연구소의 톱으로 맞바꾸는 파격적인 인사이동까지 단행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교과서 수준의 신경영전략이 아니다. 한 우물을 파는 우직함이다. 그리고 자기 텃밭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일구어내는 현장주의다. 더 늦기 전에 진정한 기업가정신을 되찾아야만 사회의 활력도 기술의 자립도 성취할 수 있다.

우종원 일본 국립 사이타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