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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마침내 "분종사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한국불교의 최대종단인 조계종이 지루한 집안싸움끝에 마침내 두집 살림을 차리게 됐다.
중흥회등 반서의현원장쪽 재야승려들이 26일 통도사에서 전국승려및 불교도대회를 갖고 수권위원회구성과 함께 채벽암원로스님 (67·신원사조실)을 새 총무원장으로 선출, 사실상의 분종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이번 승려대회에서 선출된 채총무원장과 수권위원들은 곧 수원 용주사에 사무실을 마련, 서총무원장 집행부로부터의 종권접수를 비롯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종권접수선언에 따라 서총무원장은 재임 6년만에 최대의 위기상황을 맞게 됐다.
이번 승려대회가 갖는 의미의 하나는 그동안 기반을 의심받던 중흥회등 반서재야 진영이 대규모로 결집된 세동원에 성공함으로써 서원장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극소수 해종분자들의 모임」 만은 아니라는 점을 내외에 과시할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날 승려대회에는 서원장측의 끈질긴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1천5백명의 승려와 8천명의 재가신도가 참석, 일대 성황을 이뤘다.
주최측이 표현한대로 이번 승려대회를 「비교적 성공한 작품」 으로 이끌수 있었던 이유는 종권을 둘러싼 싸움의 이미지를 가능한한 불식시키고 새집행부의 향후 진로를 개혁과 도덕성 확립에 초점을 맞춘 종단정화에 둠으로써 서원장측에 대한 명분상의 우위를 점할수 있었던데서 찾을수 있다는 것이다.
대회 주최측 승려들은 분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승려대회를 소집한 것은 종권에 대한 소아병적 욕심에서가 아니라 종단의 앞날을 위한 순수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처음 약속했던대로 중흥회 회원들의 집행부·종회등 공직 참여는 일체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번 승려대회 결의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도 서의현 현총무원장 집행부의 시행착오와제도적 모순을 참작해 도출해낸 종단개혁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우선 조계종 분규의 중요한 빌미가 충무원의 과도한 중앙집권적 행정체제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현재의 총무원중심제대신 도종무원제도를 새로 도입, 권력을 적절히 분산시키고 지방화시대에 부응하는 행정체제를 갖추어가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축소된 중앙의 총무원행정은 사회복지나 정책분야, 국내외 포교를 강화하는 쪽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총무원내의 각부서에도 대폭적인 재량권을 부여, 책임행정을 펴나갈수 있도록 하고그동안 원장의 사병조직으로 기능해 오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켜 온 규정부를 축소하는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회주최측은 이밖에도▲신설사업부를 이끌어나갈 부원장제도의 도입▲조계종 전역을 획일화하는 신도조직의 구성▲사원경제운영의 개선▲승려기초교육 후의 수계제도 마련등 다양한 개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번 승려대회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청정비구승단의 존립근거가 되는 승려의 도덕성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대대적인 정화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원강 퇴진요구의 밑바탕에 깔린 은처증(아내를 숨겨두고 있는 승려) 문제는 조계종단이 거종적으로 대처, 일대 수술을 가하지 않으면 안될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르러 있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종단의 분위기를 흐리는 은처승들을 모두 색출해 정리하고 조계종이 돈독한 수행승들만의 집합처가 될 수 있도록 정화에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서의현 총무원장은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중흥회등 반대진영이 내세우는 주장들은 『종권을 잡기 위해 꾸며낸 근거없는 모략중상』 이라고 말하고 『이들이 승려대회란 이름을 빌려 따로 총무원장을 선출하는등 중대한 해종행위를 감행한만큼 중흥회 핵심인사들에 대한 체탈도첩 (승적을 박탈하는 것) 등 강징계를 내릴 것을 검토중』 이라고 밝혔다. 서원장은 또 자시이 반대쪽의 요구에 의해 퇴진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밝혀 조계종의 두집살림은 반서진역의 낙관과는 달리 의외로 오래갈수도 있다는 전망을 낳고 있다.
【통도사=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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