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스키장 깜짝쇼 … 푸틴의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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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깜짝' 놀랐다. 현직 대통령이 각국의 취재진 앞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와 직접 브리핑을 했다. 파격이었다. 취재진은 놀라면서도 감동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이야기다. 분명 '쇼'였지만 2014년 겨울올림픽을 소치에 유치하려는 그의 강한 의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한국의 평창,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경쟁하고 있는 소치는 객관적으로 가장 불리하다. 소치는 흑해 연안의 휴양지로 겨울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도시였고, 겨울올림픽을 치를 만한 시설이 거의 없다. 평창이나 잘츠부르크에 비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지역 주민들의 유치 열의도 뜨겁지 않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치가 2014년 겨울올림픽을 유치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서서 뒤집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수시로 겨울올림픽 유치를 천명하고, 12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올림픽 유치를 위해 쓰겠다고 공표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사평가단의 현지 실사 때 직접 현장에 나타나 진두지휘하면서 어느새 소치는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로 부상했다.

한국은 올해 2014년 겨울올림픽뿐 아니라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대구), 2014년 아시안게임(인천), 2012년 세계박람회(여수) 등 굵직굵직한 국제대회를 유치하려고 한다. 이들 대회는 모두 올해 개최지가 결정된다. 따라서 지금이 대회 유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시기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꼭 1년 남았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10개월도 남지 않았다. 주요 대회의 개최지가 모두 올해 안에 결정된다는 것은 노 대통령에게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레임덕'을 거부했다. 임기 끝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 그 일은 '진보.보수 논쟁'이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동산만큼은 잡겠다'가 아니라 세계에 다시 한번 한국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이들 대회의 유치가 돼야 한다.

거기에만 '올인'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세계육상선수권은 3월에, 아시안게임은 4월에, 겨울올림픽은 7월에, 그리고 세계박람회는 12월에 개최지가 결정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육상연맹(IAAF),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등 개최지를 결정하는 주체들의 관심은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다. 많은 관중 동원, TV 중계권 확보, 마케팅 이익 극대화 등이다. 현직 대통령이 앞장서서 확실하게 보장한다면 투표권을 가진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푸틴이 던진 메시지는 이것이다. 국민적 합의가 있고,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큰 행사라면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면서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성백유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