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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명 뿐인 팬을 위해 멋지게 날아 볼 거예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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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태릉 빙상장, 국가대표 김민석 선수(15, 대전 둔산중, 이하 민석)는 스케이팅 훈련에 들어가기 앞서 꼬깃꼬깃 접힌 수첩을 폈다.

김민석 선수를 중심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국가대표 피겨 선수들, 제일 앞부터 김민석(15), 최지은(19), 김수진(18), 김연아(17) 선수

-점프 한번 실수 할 때마다 꿀밤 10번-

민석이의 개인코치인 신혜숙(50)씨가 남겨놓은 메모다. 신 코치는 다른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때문에 외국에 있다. 하지만 혼자 남겨진 민석이가 걱정스러워 수첩에 연습 과제를 적어 놓고 갔다.

남겨진 민석이는 그 수첩이 영 신경 쓰인다.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자신도 이제 어엿한 중3, 민석이는 누가 볼까 얼른 수첩을 덮는다.

대전에 살던 민석이가 홀로 서울로 올라온 것은 올해 1월,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나서다. 열다섯이란 어린 나이에 처음 단 국가대표 마크, 민석이는 19살 최지은 선수보다 4살이나 어리고, 161cm의 김연아 선수보단 머리하나 키가 작다. 하지만 그는 단 한명의 국가대표 남자 피겨선수라는 이름으로 아주 특별한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있다.

13일 태릉 빙상장 락커룸, 김민석 선수가 훈련에 들어가기 앞서 스케이트화를 신고 있다

“국가대표 된거요? 정말 좋죠. 아쉬운 게 있다면 친구들 못 만나는 거에요. 대전에 있는 친구들이 개학했는데 언제 내려 오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저 못 내려간다고 했어요. 연습 때문에,”

부모님과 친구들이 전부 대전에 있기에 민석이는 지금 혼자다. 틈틈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리지만 타지 생활에 눈물이 쏙 나올 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에 친구 한명 없이 홀로 남겨진 것을 마냥 아쉬워할 틈이 없다. 동계 체전이 코앞이다. 민석이는 입술을 꽉 깨물고 훈련을 시작한다.

민석이에겐 힘든 연습을 이겨내는 목표가 하나 있다. 그 목표란 21일부터 열리는 동계체전에서 1등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벽이 높다. 그의 상대는 또래가 아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고등학교, 대학교 선수들이다. 자신보다 신체도 훨씬 크고, 경험도 많은 경쟁자들, 그들을 넘어야만 우승이란 꿈을 이룬다는 것을 민석이는 안다.

훈련에 몰입하고 있는 김민석 선수

그렇기에 민석이의 훈련은 하루하루 극도의 긴장감 속에 진행된다. 하지만 어려운 점프 동작에서 연이어 실수를 하고 만다. 계속되는 실수, "아" 외마디 탄성을 내지른 민석이는 훈련 도중 빙상장 밖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와 민석이, 스케이트화를 벗자 부은 발목이 드러났다. 살갗이 조금만 닿아도 고통이 밀려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민석이는 그 발목에 반창고를 붙이고 고무 안대를 낀 다음 망설임 없이 빙상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점프 연습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알까? 피겨 스케이팅이 얼마나 힘든 종목 인지를,

"피겨선수들이 경기를 할때 아름다워 보이고 항상 웃고 있지만 속은 정말 썩을대로 썩고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김연아)

민석이와 함께 훈련 연습중인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말이다.

수천 번, 수만 번 넘어져야만 제대로 된 점프를 구사할 수 있다는 피겨 스케이팅, 하지만 피겨 선수들이 그런 고통 속에서도 연습을 계속해 내는 이유는 바로 자신들을 지켜봐주는 팬이 있기 때문이다.

훈련 도중 다리부상이 심해진 김민석 선수, 빙상장 밖으로 나와 다리상태를 살피고 있다

"제게도 소중한 팬이 있어요."

팬은 연아누나, 지은이 누나에게만 있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민석이, 하지만 민석이에게도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이 생겼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한테 피겨 스케이팅 타는법을 알려주었는데 팬이된 그 아이가 자신을 응원하며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단 한명의 팬을 위해 민석이는 이번 동계체전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 할 생각이다.

외국 선수 이름을 외우지 못했기에 존경하는 피겨 선수가 없다고 말하는 민석이, 하지만 좋아하는 만화책은 많다. 도라에몽을 비롯한 온갖 만화책을 다 봤다. 하지만 단 하나 안읽은 만화책이 있다.

"피겨 스케이팅을 주제로 다룬 만화책이 있었는데 읽지 않았어요. 피겨스케이터는 만화책 주인공처럼 멋지지 않잖아요. 그래도 만화책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저 최선을 다해 멋지게 날아 보려구요. 기대해주세요. 동계 체전!"

스케이트화만 신으면 한마리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열다섯 살 국가대표 민석이, 동계 체전 우승을 향한 그의 꿈은, 그리고 진짜 피겨스케이터를 향한 그의 '홀로서기'는 이제 막 시작이다.

중앙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곽진성(홍익대 상경학부3), 신동민(한림대 언론정보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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