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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 날에 베인 손에서 피가 떨어졌지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동계 아시안게임,

찾아온 갑작스런 허리 부상

대회 내내 이어진 복통과 위장염.

태릉 빙상장에서 만난 최지은 선수는 밝음 웃음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갖은 부상속에서도 그녀는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45kg의 체중은

대회 기간에 더욱 줄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가장 힘든 것은 동생 연아를

대신해 출전했다는 중압감.

잘 해내야 한다.

잘하고 싶다.

아프기에,

출전을 포기하라고 했지만,

나는 출국을 미루면서 출전을 강행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동계 아시안게임에 나가고 싶었다.

왜?

그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으니깐,

온 몸이, 다 부서질 것 같았지만,

정말 인생에서 가장 아팠지만,

프리 스케이팅 연기 후,

스케이트 날에 벤 손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나는 웃으며 경기를 끝마쳤다.

너무 기쁜 일인데, 너무 아파 눈에선 눈물이 났다.

-아시안게임 출전소감, 피겨 국가대표 최지은 -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빠진 한국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장춘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부진을 탓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메달보다 값진 최지은 선수(이하 지은)의 '투혼의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장의 관중들로부터 받은 뜨거운 박수를 생각한다면 지은이는 이미 우승자였다.

장춘 아시안게임이 한창 이던 1일, 피겨스케이팅 쇼트 프로그램 경기를 앞 둔 지은이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허리부상, 발목부상, 복통, 그리고 위장장애까지 겹쳐 경기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정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앞이 캄캄했죠, 대회 전날, 연습도 하나도 못하고 누워서 링겔만 맞고 있었거든요. 살도 2kg 넘게 빠지고 근육도 이상했죠. 힘이 하나도 없어서 경기 전 아침에 연습하는데 제 몸을 제가 가누질 못했어요."

최지은 선수의 발은 상처투성이였다. 스케이트화만 신어도 고통이 밀려오기에 반창고와 밴드로 임시처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상처투성이인 발을 감추며 지은이는 경기 참가를 결정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링크장, 자신의 쇼트 프로그램(8개 지정요소로 경기) 음악인 '로미오와 줄리엣'음악이 흘러 나왔을 때, 지은이는 있는 힘을 다해 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날 프리스케이팅(스핀, 스텝과 그외 연결동작으로 경기)에서 몸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다시한번 출전이냐, 기권이냐 기로에 섰다. 그 상황에서 지은이는 아픈 몸을 이끌고 얼음위에 섰다. 그리고 연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은이의 프리스케이팅을 '눈물의 연기'라고 말들했다.

그 시각, 지은이의 연기는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전달됐다. 인터넷을 통해 경기도 군포에 있는 집, 자신의 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김연아(17) 선수는 지은이의 경기 동영상을 끝까지 지켜 볼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같이 스케이트를 탄, 그래서 친자매 같은 지은이의 아픔이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연아 선수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는 언니가 절 대신해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않았으면 했어요. 사실 지은 언니, 저보다 더 많이 아팠거든요. 허리 부상이 심해져 정말 안 좋은 상황이었죠. 하지만 이번대회 언니가 오랫동안 꿈꿨던 대회에요. 지은 언니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출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죠. 그렇기에 지은언니는 꼭 나가겠다고 했어요."

엎친데 덥친격으로, 지은이는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프리 도중, 스파이럴(한쪽 다리를 들고 활주하는 것)에서 손을 심하게 베는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피가 나는 부상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경기를 끝마쳤다. 경기 후 지은이는 휴지로 손을 감싸고 관중들을 향해 웃어보였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소리가 들렸다. 결과는 9위였다.

후회 없는 결과였지만 지은이는 견뎌온 부상이 너무 아파 대기석에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불운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자,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그렇게 동계 아시안게임은 끝이 났다. 대회 후, 지난 7일, 태릉 빙상장에서 만난 지은이의 표정은 밝았다. 허리는 아직 완쾌되지 않았지만, 위염은 다 나았다고 했다.

"제 목표는 세계 주니어 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에요. 노력하는 자에겐 당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제 아프지 않고,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빙판위에서 멋지게 날아오르고 싶어요."

그녀의 목표는 과거가 아닌 25일에 있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다. 지은이는 예브게니 플루셴코 (토리노 올림픽 피겨 남자 금메달 리스트) 같은 연기를 꿈꾼다. 음악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것,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은 그의 연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리고 샤샤코헨(토리노 올림픽 피겨 여자 은메달리스트) 같이 앙증맞고 유연한 기술을 원한다.

최지은 선수는 태릉 빙상장에서 개인 코치 이규현씨의 지도하에 스핀과 점프등, 부족한 부분을 집중 연마하고 있었다.

지은이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그녀는 가장 행복한 피겨의 요정이 될 것이다 "시합 나가서 내 자신이 만족하게 되었을 때, 가장 행복하니까요." 라고 말한다.

20살, 대학 새내기지만(성신여대 입학예정) 대학을 가면 운동을 그만 둔다는 생각은 이미 몇 달 전에 접었다. 이제는 운동이 좋고, 그만두기 아깝다. 그리고 꼭 자신이 만족할 만큼 성공하고 싶다. 그렇기에 지은이는 은퇴시기를 2 ̄3년 뒤로 늦췄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말했다.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아프지 않을게요. 그래서 절대 울지 않으려고요."

대학생 인턴기자 곽진성.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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