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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종달새가 되어 날아볼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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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태릉 빙상장, 오후 훈련 중인 김연아(17)(이하 연아) 선수의 모습이 여느 때와 달랐다. 고난도의 트리플 점프를 마친 그녀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이상해, 아프지가 않아,”

9일 태릉 빙상장, 김연아 선수가 자신의 프리 스케이팅 음악 '종달새의 비상'에 맞춰 아름다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빙상장은 영하의 추운 날씨다. 하지만 훈련중인 피겨 선수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연아는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변화가 있음을 감지했다. 그것은 부상이란 암흑터널을 통과한 ‘부활의 빛’이었다.

“(동계 아시안 게임 전 후) 점프나 스핀을 거의 하지 못했죠.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가 아파서요. 그런데 오늘은 넘어져도 많이 아프지가 않아요.”

최근 병원을 바꿔서일까? 아니면 아픔을 담담히 견뎌 낸 연아의 당찬 성격 때문일까? 전국 체전을 2주도 채 남기지 않고 그녀의 몸이 가뿐하다. 그토록 원하던 ‘종달새’가 되어 링크 밖으로 날아갈 것처럼 연아의 점프는 높고 유연하다.

허리 디스크 판정 후, 아시안 게임을 포기하면서까지 재활 훈련에만 열중했던 연아, 하지만 그동안 별 차도가 없었기에 본인은 물론 팬들의 애간장이 탔었다.

하지만 얼마 전 몸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말끔히 나은 것은 아니지만 허리 부상의 고통이 줄어들고 있었다.

“오늘처럼만 아프지 않다면 동계 체전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아는 기대에 부풀어 말한다.

“정말 이대로라면(대회에) 꼭 참여하고 싶어요. 그리고 출전하면 되면 정말 아름다운 연기를 선보일 거에요. 팬 분들도 그렇고 우리학교 선생님, 친구들도 그렇고 모두 간절히 원하는 일이거든요.”

자신을 사랑하는 팬과 소중한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고 싶은 연아의 꿈, 연습 현장에는 때마침‘종달새의 비상’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녀의 연기는 가볍고도 빠르게, 경쾌하면서도 아름답게 진행된다.

하지만 연아는 자신의 연기에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달지 않는다. 자신의 연기를 만든것은 지독한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여린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막상 연기하는 선수의 입장에서는 짜여진 안무를 최대한 정확하게 구사 하는 게 중요해요. 아름답다. 그런 생각은 할 틈이 없어요. 보기와는 달리 하나하나 동작을 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소모가 대단 하거든요. 그래서 선수들에게 4분이란 연기시간은 4분이 아닌, 10분, 길게 보면 1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멀리서 연습 현장을 지켜보던 지상훈련 트레이너 최광훈(28)씨, 국가대표 피겨선수 김나영선수의 외사촌이기도 한 그는 연아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빙상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트화 끈을 다시 한번 동여매고 있다.


“맞아요. 4분의 연기는, 마라톤으로 치면 마지막 4km를 전속력으로 뛰는 것과 같은 체력소모가 들게 만들죠. 지치지 않고 웃으며 연기를 하는 것은 대단한 거죠. 마라톤은 웃으며 뛰기 힘들잖아요.”

힘든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 연아는 연습 현장에서 까르르, 소리 내어 웃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많아졌다. 긴장된 연습현장에서 한 박자 쉬는 여유가 그녀에겐 생겼다.

그것은 라이벌 아사마 마오(일본)의 트리플 악셀 기술 보다, 후구리 수미에(일본)의 ‘노련미' 보다도, 훨씬 멀리 날 수 있는 피겨 여왕만의 ‘날개’였다.

연아는 지금 그 '날개’를 지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바로 캐나다로의 전지훈련이다. 동계 체전이 끝나고 27일 한 달간의 훈련을 위해 캐나다로 출국하는 연아, 그녀의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3월에 열리는 시니어 세계 선수권 대회를 향해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요. 캐나다 오셔 코치와 함께 기본 안무도 갖추고 또 여러모로 마지막 점검도 해보고 싶고요. 세계 선수권 열심히 준비해서 멋지게 날아볼게요. 많이 응원해 주세요.”

9일, 태릉 빙상장 피겨 락커룸에서 김연아 선수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무대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 뒤 이은 부상으로 고통을 맛본 연아, 이제 부상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세계 선수권대회를 향한 그녀는 지금 비상을 꿈꾸고 있다.

# [Box] 김연아와의 ‘펀,펀’ 인터뷰!
얼마 전 김연아 선수는 모 포털 사이트 지식검색에 -언제 가장 행복을 느끼나요?- 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때 누리꾼들의 답변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진 김연아 선수는 행복한 순간을 언제라고 생각할까?

"제가 목표했던 것을 이룰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열일곱‘피겨여왕’은 진지하고 당당하게 답한다.

“저는 다가올 올림픽에서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경기를 선보이고 싶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성적과 상관없이 감동을 주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피겨여왕 김 선수의 꿈은 올림픽 우승이나 세계 선수권 우승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피겨 선수로써 가지는 목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의 연기를 펼치는 것이다. 김 선수가 존경하는 미쉘콴(미국) 선수처럼 말이다.

“98년, 나가노 올림픽 때 TV로 미쉘콴 선수를 처음 보게 되었어요. 우아하고 멋지게 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죠.”

김 선수는 말을 이은다.

9일, 피겨 락커룸, 일본인 팬으로부터 편지를 전달받은 김연아 선수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 전지훈련을 갔었어요. 그때 미쉘콴 선수와 마주친 적이 있어요. 마냥 신기하고 좋았었죠. 그런 제가 이제 미쉘콴 선수와 한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어요. 이번 시즌이 첫 시니어 데뷔에요, 아직 미쉘콴 선수와 같이 경기를 한 적은 없지만, 올 해부턴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설레네요.”

그 무대를 위해, 김 선수는 연습 또 연습이다. 사실 그녀에게 피겨이외의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나이 또래라면 흔히 갖는 별명조차 없었다.(링크 안에서는 동료 선수들에게 아줌마로 불림) “별명 없어요?”를 두 번이나 물은 필자에게 “정말 없다니까요.”하며 쓴웃음을 지어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 수 없기에 그 흔한 별명조차 없지만, 지금 김 선수는 외롭지 않다. 사랑하는 엄마와 든든한 팬들 항상 꼬리 치며 자신을 반기는 애완견 토토, 그리고 또 하나, 바쁜 일상을 웃게 만드는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있다. 이렇게 힘을 얻는다는 그녀가 웃어 보인다.

피겨 여왕의 웃음을 찍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니 김 선수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에~사진 너무 많이 찍는 것 아니에요?”

김 선수의 취미생활 중 하나는 노래방 가기다. 노래를 가리지 않고 아무 노래나 다 부른다. 그래서인지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다. 얼마 전 팬 미팅에서 부른 노래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떴다. 하지만 김 선수는 자신이 부른 노래가 인터넷에 뜬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제 노래 동영상 정말 안습(인터넷 용어) 이에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제발~(웃음)”

대학생 인턴기자 곽진성.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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