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습중 틀어져버린 1번 척추 '아픔' 잊고 날아오르는 '종달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손 똑바로 들어라. 날개가 펴지지 않았는데, 똑바로 날 수 있겠나."

13일, 빙상장에서 점프 연습중인 국가대표 김수진(18,이하 수진)선수,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 그녀의 어머니 권미경(이하 권씨)(48)씨다. 지적하는 모양새가 여느 코치 못지않다. 권씨는 수진이의 점프 실수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었다.

13일 태릉빙상장, 점프 연습 도중 넘어진 김수진 선수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유난히 밝은 성격의 수진이는 오늘도 빙상장에 모인 '종달새'들을 웃긴다. 점프를 뛰다 빙상장에 넘어진 후,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보다 못한 김연아 선수가 웃으며 한마디 거든다.

“언니~얼른 일어나, 추한 모습 사진에 다 찍히겠다.”

그 말에 최지은 선수도 소리 내어 웃고, 막내 김민석 선수도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 권씨는 따끔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빨리 일어나지 못해?”

그러자 수진이가 투덜거리면 일어난다.

“치,”

다시 연습을 시작한 딸을 보며 권씨는 속삭이듯 말한다.

“딸아이가, 워낙 성격이 긍정적이에요. 너무 천진난만하고 개그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제가 가끔씩은 따끔히 혼을 내줘야 해요. 그래야 연습을 집중해서 하니까요.”

선수는 알까? 이런 엄마의 마음을,

열여덟 살 수진이는 오늘 모인 네 명의 피겨 국가대표 중 최지은 선수(19살)에 이어 둘째다. 하지만 나이순이 아니라 대표팀으로 선발된 시간순으로 따지면 그녀는 제일 막내 축에 속한다.

수진이는 작년 12월 처음 국가 대표를 달았다. 다른 선수에 비해 2~3년은 늦은 선발이었다. 거기에는 부상이란 이유가 있었다. 연습 도중, 넘어져 1번 척추가 틀어졌던 것이다. 수진이가 다시 날아오르는 오랜 재활기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밝은 성격으로 그 힘든 기간을 이겨냈다.

김수진 선수와 그녀의 어머니가 피겨 대표 락커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수진이는 항상 웃었다. 하지만 아파도 항상 밝은 딸을 본다는 것, 어머니 권씨에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피겨 스케이팅을 시킨 것을) 후회를 했어요. 원래 운동을 시키려고 했던게 아닌데, 피겨 는 단지 취미로 시킬려고 했던 건데, 수진이가 너무 좋아하니까, 아무리 아파도 웃으면서 하려고 하니깐 그만두라고 할 수가 없었죠."

오랜 고통에 대한 보답일까? 권씨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작년 겨울, 수진이가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된 것이다. 권씨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기쁜 얼굴 아래 가슴 한 구석이 아프게 쓰라렸다. 부모로써 제대로 지원을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딸 아이는 가능성이 많았어요. 그렇기에 전지훈련, 국제 대회 출전등을 많이 시켜줬어야 했어요. 하지만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못했죠. 그 생각만 하면 미안하고 가슴이 많이 아프네요.”

일반 공무원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딸아이를 연 5천만원이나 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권씨는 수진이와 연습과정을 함께했다. 수진이의 그림자가 되어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수진이의 자신감을 키워주고 있었다.

“자식을 피겨스케이터로 키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버려야 하는 일이에요. 엄마는 자녀와 일심동체가 돼야 해요. 개인의 삶은 존재하지 않아요. 수진이가 포기하지 않는데, 제가 마음대로 딸아이의 꿈을 꺾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태릉 빙상장에서 김수진 선수가 현란한 스핀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부상을 이겨내고 날아오르는 한 마리 종달새, 수진이의 실력은 지금 급성장세다.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점프력이다.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서 점프의 높이는 선수의 실력을 판가름한다. 점프가 높을수록 스핀 후 착지를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승분위기를 타고 얼마 전에는 꿈에도 그리던 첫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2006 주니어 세계 선수권 2차대회 헝가리 부다페스트 대회였다.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수진이는 13위를 차지했다. 그 결과를 한국에서 기다린 어머니는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보다 부모들이 더 많이 떨어요. 아쉬운 것은 대회를 위해 1년 고생하는데 정작 경기를 하는 것은 길어야 4분, 한번 실수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거에요. 딸아이와 같이 연기를 하는 심정이었어요.”

첫 국제 대회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진이는 장점을 더욱 살려 연습하고 있다. 적어도, 딸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녀의 어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것이 있다. 1등에만 관심을 갖는 우리나라의 일등 지상주의다.

“1등이 아니라고, 노력을 안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다만 조금 부족할 뿐인데, 조금 실력이 모자랄 뿐인데 세상의 눈은 너무 냉혹하네요. 링크장을 찾아 온 사람들은 2등과 3등 선수한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더군요.”

권씨는 세상의 눈이 비록 모질더라도 딸아이가 국가대표 선수로서 당당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권씨는 한 가지 소망을 더 말했다.

국가대표 김수진(18)선수와 그녀의 어머니 권미경(48), 그리고 지상훈련 코치 최광훈(28)씨.

“우수한 국가대표 피겨 선수들의 전지훈련과 대회출전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 지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2, 제3의 '피겨여왕'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네요.”

권씨의 말은 열악한 여건 속에 ‘피겨 요정’을 키우는 대한민국 ‘피겨 엄마’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대학생 인턴기자 곽진성.신동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