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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동네로 몰리는 '서민 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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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상호저축은행들의 '강남행'이 줄을 잇고 있다. 2005년 이후 서울지역에 신설된 저축은행 지점의 4분의 3이 강남.서초.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와 목동에 집중됐다. "강남엔 100m마다 저축은행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표적인 서민 금융회사가 대표적인 부자지역만 찾아나서는 데는 '돈벌이' 외에도 이유가 있다.

◆ 서민 외면하는 서민 금융회사? =14일 상호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부산시 사상.영도구, 남양주.김포시 등 전국 30개 구, 20개 시에는 저축은행 점포(출장소 포함)가 아예 없다. 서울만 하더라도 25개 구 가운데 성동.용산.서대문구 등 7개 구가 저축은행 '사각지대'다. 경제활동이 비교적 활발해 점포를 개설할 만한데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2005년 이후 서울 지역에 신설된 18개 지점 가운데(12일 현재) 72%인 14개가 강남권에 집중됐다. 경기도에서도 신설된 11개 지점 가운데 7개 지점이 분당.일산 등 신도시에 몰렸다. 제주에 본점을 둔 미래저축은행은 지난해 압구정.잠실 지점과 테헤란로 출장소 등 3개의 점포를 강남권에 개설했다. 업계 1위인 솔로몬저축은행은 서울 을지로 본점을 제외한 10개 영업점 중 8곳을 강남권에 두고 있다.

이를 두고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한다'는 상호저축은행법 제1조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2001년부터 저축은행 지점 신설을 허용했지만 부촌에만 지점이 집중되고 있다"며 "서민과 지역금융을 활성화한다는 설립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규제 때문에 강남 집중 불가피=저축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외환위기 이전 230개가 넘던 저축은행이 현재는 110개로 줄어드는 구조조정을 거치다 보니 공공성보다는 수익성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저축은행들은 그간 수익 개선에 목을 매다시피했다. 대표적인 게 '○○2저축은행' 등 상호에 '2'를 붙여 계열사를 만든 것이다. 부실을 우려한 고객들이 예금자 보호한도인 5000만원을 초과해 돈을 맡기려 하지 않자 내놓은 고육책이다. 실상은 주요 주주가 같은 회사지만 법률적으로는 독립법인이기 때문에 ○○2저축은행에서도 5000만원까지 예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 저축은행은 추가로 자금을 끌어들이고, 고객은 안전하게 돈을 맡길 수 있으니 '1석2조'인 셈이다.

현재 저축은행이 점포를 추가로 내려면 자기자본금이 지역별 기준 자본금의 두 배 이상이 돼야 하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 무수익 여신 8% 미만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처럼 지점 설치 요건이 까다롭다 보니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돈이 되는 곳'에서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축은행들의 주장이다.

저축은행중앙회 하태원 선임조사역은 "금융감독 당국의 대형화 정책과 각종 규제에 맞춰 수익을 내고 점포를 확장하려면 강남권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저축은행이 서민들 옆에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지점 설립 요건 등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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