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만 되고 보자”에 쐐기/선관위 의원선거법개정 의견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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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후보가족이 처벌 받아도 당선무효/특권의식 체질화된 의원들 받아들일지 의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0일 돈안드는 선거실시의 시금석이 될 엄격한 내용의 국회의원선거법개정의견을 마련,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6월 광역의회선거에서 재력가 출신의 후보자들이 수십억원씩의 선거자금을 뿌리는 광경을 지켜보며 14대 총선에 충당할 선거비용 걱정에 가슴졸여 온 국회의원들이 선거운동방법의 대폭 개방과 금권선거의 엄격한 제재를 규정한 선관위의 이 개정의견을 어느 정도 수송할지 주목된다.
이번 개정의견의 가장 골자는 선거법위반으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최종 판결때까지 국회의원자격을 정지시키고 후보자의 가족 등이 처벌을 받아도 당선을 무효화한다는 조항들.
선관위가 이 조항의 신설을 내세우게 된데는 「당선되고 나면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쟈」는 식의 고질화된 선거풍토를 바로잡아 「과정이 잘못되면 당선도 취소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겠다는 의도로 분석되는데 특권의식이 체질화된 의원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제한하는 이런 의견을 쉽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웬만큼의 선거부정은 용인되는 풍토에서 선거운동을 해왔던 의원들로서는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선거법개정에 쉽게 동조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역의원들중 일부는 선거법 위반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배려나 집권층의 비호속에서 13대 국회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까지 갖은 수단을 써 상급심의 판결을 유보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유유히 계속하고 있는 현실임을 감안할때 선관위의 개정의견은 타당성이 높다.
선관위가 선거법에 대한 재판기간을 심급별로 6개월씩 모두 1년6월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도 당선되면 4년 임기가 보장되는 이같은 관습을 타파해 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선거법위반행위에 대한 처벌강화문제와는 달리 선거브로커를 금품제공 후보자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자는 견해는 현실성있는 제안이다.
광역의회 선거시 후보자들이 뿌린 돈의 80∼90%는 전문선거꾼들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10∼20%의 돈만이 유권자들에게 조심스럽게 전달됐다는 것이 선관위측의 분석이다. 그만큼 공명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져 예전처럼 마음놓고 돈봉투나 선물꾸러미를 호별방문식으로 전달히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거브로커들은 후보자들의 초조한 심리를 악용해 후보자들에게 막대한 선거자금을 쓰도록 부추겨 그 일부를 공공연하게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4대 총선에서는 후보자의 표에 대한 맹목성을 악용,금품살포를 요구·권유·중개하는 선거브로커의 움직임에 족쇄를 채우자는 것으로 이들 브로커의 명단은 이미 지역 검·경찰과 지역선관위에 의해 대체로 파악돼 있다는 것이 선관위측 주장이다.
선관위는 이와 함께 금품을 받은 유권자가 자수해올 경우 처벌을 감면 또는 면제해준다면 후보자들의 금품살포에 심리적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후보자의 은행계좌 설치를 의무화해 모든 선거비용의 지출을 계좌를 통하도록 하고 선거가 끝난뒤 공인회계사의 감사보고서 제출명령 권한을 선관위에 부여함으로써 선거비용의 과다지출을 규제하고 선관위의 위상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노리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선관위 개정안은 후보자와 유권자의 접촉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관할 선관위에 등록한 사회단체에 의한 후보자합동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하는등 진취적인 선거운동방안 등을 제시했다.
연설회도 현재 3회의 합동연설회만 허용하던 것을 읍·면·동당 2회의 개인연설회 및 1회의 합동연설회로 확대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충무­통영­고성 선거구는 80회의 연설회가 가능하며 선거구평균 32회의 연설회가 열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문·방송을 이용한 선거운동도 허용,일간지에 1회의 광고를 게재할 수 있도록 하고 선거구단위로 텔리비전과 라디오에서 각1회씩 3분간 무료연설을 할 수 있도록 하며 후보자의 경력도 방송토록 하고 있다.
아울러 유효투표수의 10% 이상을 득표한 후보자에게는 선거벽보·공보 등 공영비용을 선관위에서 전액 보전해주고 합동연설회비용도 국고에서 지원토록 하고 있다.
13대 총선에서 유효투표의 10% 이상을 얻은 후보자는 60% 정도이며 벽보·공보와 관련한 선관위부담액은 15억원,합동연설회(1회기준)비용은 4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선관위 개정안이 그대로 수용될 경우 후보자들은 ▲텔리비전과 라디오연설 3분씩 각 1회 ▲경력방송 ▲합동연설회 ▲선거벽보·공보 등의 선거운동을 돈안들이고 할 수 있게 된다.
중앙선관위는 내년에 14대총선과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장선거,대통령선거 등이 겹치는 점을 고려,92년을 공명선거 정착의 해로 규정하고 여러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국회의원선거법개정안을 마련했다.
선관위의 돈안쓰는 선거를 위한 선거법 개정의견이 여야의 협상과정에서 선거구제 증설논란으로 묻혀버리거나 지난해 12월 지방의회의원선거법 제정때처럼 고무줄협상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선거풍토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크게 일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때 여야가 선거법협상과정에서 과거처럼 또 기득권 보호차원에서 선관위의 개정의견을 묵살한다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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