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음악가 〃후진양성〃 3중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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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음악에 평생을 바쳐온 원로 여성음악인들이 후학들을 위해 사재를 헌납, 음대입시부정사건이니 가짜외제악기사건 등으로 얼룩진 음악인들의 체면을 살려주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인가야금 병창 예능보유자 박인희여사(본명 오계화·71)가 자신이 운영하던 운당여관(서울종로구운니동·시가 24억원)을 기증하여 시흥동에 건립할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가 22일 드디어 기공식을 갖게됐다. 국립 국악고등학교와 함께 국악인 양성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국악예고는 국내 유일의 민간 국악예고. 박인희·김소희·박초월·김인수·김윤덕선생 등의 대가들 아래에서 박범훈교수(중앙대 )·김덕수씨 (사물놀이 )등 중견국악인들이 배출돼 국악발전에 큰 몫을 해왔으나 교실·연습실 등이 크게 부족해 곤란을 겪어왔다.
서양음악 분야에서는 성악인 김자경여사(74)가 최근 김자경오페라단을 사단법인체로 만들면서 평생을 기거해온 대지 2백6평짜리 자택(서울서대문구 신촌동·시가약15억원)과 현금 2억원을 이 법인에 기증했다. 그 동안 가야금산조의 명인 김죽파여사(89년 작고), 서도소리의 명인 김정연여사(87년 작고), 현역으로 활동중인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예능보유자 김월하여사(73)등이 잇따라 사재를 털어 자기분야의 후진양성에 쓰도록 해왔으나 양악 분야에서는 김자경여사가 처음이다.
특히 박귀희여사가 국악예고 이전 및 신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헌납한 운당여관은 한때 풍류를 즐기던 정명들의 사랑방이자 한국 바둑계의 명소로 손꼽혀 왔다.
40여년간 정성을 쏟아온 운당여관이 사라지게 된 것을 못내 아쉬워했던 박여사는『국악인들이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뜻을 모아 세운 국악예고가 재정난에 허덕이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면서 『앞으로 좀더 좋은 환경에서 후배들이 예도를 배우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저 호뭇할 뿐』이라고 즐거워한다.
박여사가 박강주·김소희씨 등 동료 국악인들과 힘을 합쳐 만든 민속예술학원을 토대로 학교법인 서울국악예술학교(84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가 됨)를 설립한 것은 지난 60년. 이때 대전에 있던 2만평의 과수원 등을 아낌없이 내놨던 박여사는 또 한차례 자신의 전재산을 쏟아 국악예고를 신축, 이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이로써 국악예고 학생들은 92년 2학기부터 현재의 성북구석관동 학교(약1천평)에서 구로구시흥동의 새 학교(약5천평)로 옮겨 공부하게 됐다. 새 학교는 지하2층, 지상 5층의 연건평 3만여평 규모로 무용실·음악실·강당 등을 두루 갖춘 예술관과 일반학과 수업을 위한 인문관이 들어선다.
한편 김월하여사는 평생동안의 출연료 등으로 마련한 약7억원 상당의 5층 건물을 지난 3월 월하문화재단에 기증, 재단측은 그 임대수입으로 장학사업·월하국악상 제정·학술연구지원 등의 다양한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김여사는 이미 지난 60년대부터 서울대음대 국악과재학생 중 매년 2명에게 장학금을 주는 외에도 재능이 있으나 경제형편 때문에 국악에 전념할 수 없는 학생들을 뒷바라지하여 홍종광교수(이대·대금)를 비롯한 중견국악인 양성에 큰 몫을 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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