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곤충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 다나카 하지메 지음, 지오북, 261쪽, 1만6000원
긴 자루처럼 생긴 천남성의 꽃 속에 빠진 버섯파리를 보자. 꽃 차례를 감싼 벽이 미끄러워서 파리는 기어 올라갈 수가 없다. 출구를 찾아 헤매면서 온 몸은 꽃가루 범벅이 된다. 들어온 곳이 다행히 수꽃이면 탈출이 가능하다. 아래쪽에 작은 틈새가 있는 덕분이다. 하지만 암꽃이면 버섯파리는 그곳에서 최후를 맞아야 한다. 출구가 없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꽃 포 속을 헤매며 수꽃에서 묻혀온 꽃가루를 흩뿌려야 한다.
책은 이처럼 흥미진진한 내용을 가득 담은 생생한 관찰기다. 꽃 110여 종, 곤충 70여 종이 서로 어떻게 유혹하고 이용하고 싸우고 속이고 따돌리는 지를 현장감있게 설명하고 있다. 항목마다 상세한 그림(관찰일지)을 넣었으며 '꽃 해부용 메스 만드는 법' 등 실용적인 정보도 많다.
저자는 고졸의 금속세공사지만 틈나는 대로 연구에 매진해 꽃 생태학 분야에서 우뚝 섰다. 1999년 일본 화분(꽃가루)학회의 학술상을 아마추어로서는 처음 받았고 그 이듬해엔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까지 수상했다. 번역 내용을 국립수목원의 곤충분류학 박사와 식물분류학 박사가 감수하고 원저에 없는 원색 화보 150개를 추가해 더 좋은 책이 됐다.
조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