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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꽃과 나비의 대화 "너 죽고 나 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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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꽃과 곤충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 다나카 하지메 지음, 지오북, 261쪽, 1만6000원

꽃과 곤충의 이야기라면 "꿀을 먹으면서 꽃가루받이를 도와준다"는 공생관계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곤충과 꽃은 각자 스스로의 번식과 생존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을 뿐이다. 서로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긴다.

긴 자루처럼 생긴 천남성의 꽃 속에 빠진 버섯파리를 보자. 꽃 차례를 감싼 벽이 미끄러워서 파리는 기어 올라갈 수가 없다. 출구를 찾아 헤매면서 온 몸은 꽃가루 범벅이 된다. 들어온 곳이 다행히 수꽃이면 탈출이 가능하다. 아래쪽에 작은 틈새가 있는 덕분이다. 하지만 암꽃이면 버섯파리는 그곳에서 최후를 맞아야 한다. 출구가 없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꽃 포 속을 헤매며 수꽃에서 묻혀온 꽃가루를 흩뿌려야 한다.

책은 이처럼 흥미진진한 내용을 가득 담은 생생한 관찰기다. 꽃 110여 종, 곤충 70여 종이 서로 어떻게 유혹하고 이용하고 싸우고 속이고 따돌리는 지를 현장감있게 설명하고 있다. 항목마다 상세한 그림(관찰일지)을 넣었으며 '꽃 해부용 메스 만드는 법' 등 실용적인 정보도 많다.

저자는 고졸의 금속세공사지만 틈나는 대로 연구에 매진해 꽃 생태학 분야에서 우뚝 섰다. 1999년 일본 화분(꽃가루)학회의 학술상을 아마추어로서는 처음 받았고 그 이듬해엔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까지 수상했다. 번역 내용을 국립수목원의 곤충분류학 박사와 식물분류학 박사가 감수하고 원저에 없는 원색 화보 150개를 추가해 더 좋은 책이 됐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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