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예산 줄일 대목 있을것(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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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년도 예산이 올해 본예산보다 23%나 늘어난 팽창규모로 잡혀졌다. 정부와 여당의 협의를 거친 단계에서의 예산증가율은 지난 81년이후 최대폭이다.
국민경제의 전반적인 동향이 긴축의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으며 정부 또한 긴축기조 유지의 정당성을 누차 강조해오고 있는 현실속에서 거시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인 재정운용에 있어 팽창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않는 처사로 보인다.
팽창의 인상을 지우기 위해 당국은 올해 편성한 추경예산까지를 감안하면 증가율이 크게 낮아진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일단 본예산은 본예산끼리 비교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예산을 대폭 늘릴때는 언제나 그럴싸한 명분이 따른다. 내년 예산의 경우에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과 농업구조개선 등이 세출증대의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같이 시급한 사업들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예산당국의 입장은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우리 경제현실의 전체를 들여다 보면 지금은 재정의 긴축기조를 유지할 때라는 것을 누구보다 정부당국이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이미 정부가 통화의 방만한 운용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한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아직 완전히 진정됐다고 보기 어려운 물가불안을 해소하고 확대일로에 있는 국제수지 적자를 개선해 나가는데 있어 재정팽창이 미칠 악영향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구나 지금은 고삐가 풀린듯한 사회전반의 과소비를 억제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를 정부가 주도해 조성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그 솔선수범의 으뜸가는 무대가 바로 재정의 운용이다.
또한 공무원 처우개선과증원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인건비를 26%나 증액시킨 것도 얼른 납득하기 어렵다. 민간부문의 한자리수 임금인상을 강조해온 정부의 의지는 정부부문의 인건비 책정에도 반드시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기의 과열조짐 속에서 한때 민간기업의 설비투자확대를 자제토록 요구했던 정부라면 응당 정부부문의 투자에도 자제의 흔적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정부보다 만간이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효율성의 차이가 양부문에 엄존하는데도 민간이 쓸 자원의 몫을 정부쪽으로 더 많이 가져 간다는 것은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팽창의 논거가 약한데 굳이 팽창을 고집한다면 예산증액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혹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선거,국회의원 총선,그리고 연말의 대통령선거 등 내년의 정치일정과 재정팽창의 관계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거부반응의 얘기들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앞으로 많은 심의단계들을 거치면서 이상의 지적들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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