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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게 늙고' 싶은 엄마의 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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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시간 있으면 커피나 한잔…’. 회사원 이동혁(33)씨는 며칠 전 앞에 가는 ‘30대 여자’의 미니스커트에 이끌려 말을 건넸다가 고개를 돌리는 얼굴을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진한 색조 화장 아래 보이는 얼굴이 마흔 살은 넘어 보였던 것이다. 이씨가 요즘 아줌마 사이에서 불고 있는 샹그릴라 신드롬을 알았다면 여자에게 접근하기 전 좀 더 신중하지 않았을까?

“딸과 함께 와서 산 옷을 같이 입는다는 어머니가 많아요. 우리 브랜드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 주 타깃이지만 40대 이상 손님이 10명 중 4명꼴로 오죠. ”

캐릭터 캐주얼 브랜드인 ‘오즈세컨’ 롯데 본점 종업원의 말이다. “아직 중년을 테마로 한 상품 매장이 따로 기획된 것은 아니지만 비싼 상품에 거부감이 없는 중년 여성들은 영 캐릭터 캐주얼 매장의 주요한 손님”이라고 백화점 매장 관계자는 말한다.

딸과 옷 같이 입는 주부 많아

이처럼 젊은 여성과 유행을 공유하며 ‘젊게 늙기’를 바라는 아줌마들의 심리를 ‘샹그릴라 신드롬’이라 한다. 샹그릴라 신드롬은 패션·속옷·화장품 시장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노화를 억제하는 노화방지 산업에서도 활발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샹그릴라 신드롬이란?

샹그릴라는 1930년 미국 제임스 힐턴의 소설인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가상의 지상 낙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LG경제연구원이 지은 ‘2010 대한민국 트렌드’에서 샹그릴라 신드롬으로 소개돼 40, 50대 중년 여성들이 노후 생활을 젊게 보내고 싶어 하는 징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2000년대 초부터 보톡스 시술이 보편화되면서 성형수술은 20~30대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전체 보톡스 시술 환자 중 60% 이상이 40대 이상 여성이다.” 이지함 성형외과 강남점의 신예식 원장의 말이다. 신 원장은 보톡스와 필러 등 주름 개선 시술의 전망을 매우 낙관적으로 본다. 주로 아줌마들은 보톡스로 주름을 펴주면서 필러 시술을 통해 레스틸렌 성분을 피부의 골에 채워주는 방식을 따른다.

BK성형외과의 허영인 실장은 “사회생활을 하는 중년 여성이 늘면서 2005년에 비해 중년 환자가 15% 늘었고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체형 교정과 안티 에이징 산업이 이미 오래전에 성장기를 겪었다. 우리나라도 5~10년 사이에 노화 억제 수술이 쌍꺼풀 수술처럼 성형수술의 큰 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얼굴만 관리해서는 젊음의 낙원에 도달할 수 없다. 평일 오전 10시 강남 베드타운에 위치한 피트니스클럽은 아줌마들로 붐빈다.

“요즘은 집에 있는 사람도 관리를 해줘야 해. 남편이랑 애들 표정부터 달라진다니까. ” 땀을 닦는 박모(47)씨는 점찍어 둔 티셔츠를 입기 위해 하루 2시간 러닝머신에서 운동한다.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는 40대 양모씨는 “군살 대신 근육과 친해졌다”며 “남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운동 후 자신감이 생겨 바깥일도 잘 풀리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연예인 부럽지 않은 S라인을 가진 이들에게서 ‘남은 밥을 모아서 비벼 먹는’ 아줌마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르메이에르스포츠 신촌센터는 40대 중년층을 위한 건강관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전체 회원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지만 중년 여성 회원들이 크게 만족하고 있다. 혈압, 심박수 등을 규칙적으로 체크해 건강을 관리하고 일대 일 트레이너가 꾸준히 운동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줘 일상이 젊어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

센터 체련장 현주 매니저의 말에서 주부들의 운동에 대한 집중도와 효과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에는 황신혜, 변정수 같은 아줌마 연예인의 다이어트 비디오도 한몫했다. 주부 연예인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 만큼 일반 주부들도 적극적이다.

에어로빅·요가 등 소모임을 통해 패션·피부에 관한 정보를 나누고, 온라인 동호회에서 얼짱·몸짱·동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얼짱 주부들로 구성한 온라인 모임에서는 주부모델 캐스팅이 이뤄지기도 한다.

노화방지 산업 중에서도 특히 노화억제 의약품과 노화방지 건강식품 시장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항산화제는 노화를 억제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전체 의약품 시장이 위축되고 있음에도 코엔자임 Q10 함유 영양제 ‘웰리드’는 2005년 7월 출시 후 하반기 매출 15억2000만원을 달성했다”며 성장 비타민 시장은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비타민C, 코엔자임 Q10 등의 노화억제 성분은 앞으로도 성장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최초로 코엔자임 Q10을 개발한 대웅제약의 ‘게므론코큐텐’을 필두로 영진약품의 ‘영진큐텐’, 삼진제약의 ‘웰큐텐’ 등 비슷한 제품도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 코엔자임 Q10은 의약품뿐만 아니라 건강 식품, 화장품으로도 이용 가능성이 많아 그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내 클로렐라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대상 웰라이프의 클로렐라 제품 또한 92년 처음 시장에 선보인 후 2005년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위축된 경기 탓에 현상 유지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다른 제품의 감소율을 생각하면 든든한 효자 품목이다. “선진국형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건강식품 산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장명상 채널지원팀 대리는 강조한다.

넉넉해진 경제력이 뒷받침

지난해 9월에는 화장품, 의약품 연구개발 전문기업인 한국콜마에서 국내 최초로 나노 항노화 화장품을 개발해 화제가 됐다. 기능성 화장품은 크게 주름 개선, 미백, 자외선 차단 등 3개 분야로 나뉘는데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가진 3중 복합 기능성 화장품에 첨단 나노 기술을 적용해 탁월한 효과를 내는 게 나노 항노화 화장품이라고 업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한국콜마의 2006년 기능성 화장품 매출액은 80억원으로 전년보다 8.6% 증가했다. 아모레퍼시픽에서 2006년 실시한 여성 화장품 사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40대 이상의 중년은 영양크림을 꼭 사용하고 아이크림·주름·탄력 제품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도 아줌마들의 소비성향을 나타내는 신드롬은 있었다. 가정주부로 살면서 미혼처럼 보이게 자신을 가꾸는 ‘미시족’이 94년 등장했고, 그 후 거기에 경제력과 사회적 위치를 더한 ‘줌마렐라’도 붐을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이 소비를 부추긴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주로 이런 현상이 서울 강남에서 일어나는 것도 그런 의견을 뒷받침한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40~50대 아줌마들이 만들어 낸 소비풍조에 집중하기보다 신사업이 발전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인구 고령화가 시작된 미국·유럽·일본은 노화방지 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LG경제연구원 고은지 연구원은 “단순히 노화현상을 감추는 게 아니라 노화를 지연시키고 젊음을 되돌릴 수 있는 바이오테크 기술 발달이 예상보다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이라며 “2020년 그런 기술들이 실제 상업 제품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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