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은의 한보지원 정당한가/심상복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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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주 정태수 회장의 회장직 사임발표가 있었지만 한보문제는 지금도 달라진게 하나도 없다. 회장직을 유지하든 내놓든 소유권의 변동이 없는 한 그것은 문제의 본질과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중에 서울신탁·산업·상업 등 3개 은행은 한보철강에 빚보증을 섰다가 대신 물어준 4백82억원을 이미 일반대출로 바꿔줬거나 곧 전환해 주기로 했다.
지난 6월에는 조흥은행을 포함한 4개 은행이 1백67억원의 신규대출을 해줘 수서주택조합원과의 분쟁을 해결하도록 배려했었다.
이같은 금융지원에 대한 은행측의 논리는 간단하다. 이것이 은행측이 입을 수 있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한보철강이 4백82억원을 당장 갚을 수 없는 현실에서 이를 대출로 전환시켜주지 않을 경우 한보철강은 은행연합회규약에 따라 은행거래가 전면중단돼 도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도산이 은행 및 국가경제에 미치는 손실에 비하면 4백82억원은 약과라는 논리다. 따라서 잘 돌아가는 회사를 깨는 것이 오히려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맞는 얘기다. 「고위층」에서 한보를 살리라는 지시가 있었든 없었든 간에 은행측의 입장에서 이같은 행동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채권은행들은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민간기업이긴 하지만 자신들이 국민다수의 예금을 받아 운영되는 「공적기관」임을 애써 외면하려 든다는 점이다.
문제기업이 더 이상의 금융지원 없이도 굴러간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추가지원이 필요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기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보에 계속 투입되는 돈의 주인은 은행이 아니라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일반여론이 기업주와 기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한보그룹에 대한 정회장 일가의 지분이 변동없는 한 은행이 한보라는 기업을 살리는 일은 곧 정회장을 살려주는 일이 되며 그것은 결국 지금까지 쌓인 「특혜」의혹을 더욱 깊게 해줄 뿐이다.
기업주는 기업을 건실하게 끌어가야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다하지 못한데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거나 책임을 묻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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