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인 막부(幕府) 말기. 가난한 하위 무사 세이베이(사나다 히로유키)는 아내를 폐병으로 잃고 두 딸과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살아간다. 빼어난 무술실력에도 살생을 반대하며 칼을 잡지 않는 그다. 어느 날 남편의 학대를 피해 친정에 온 친구 여동생 도모에(미야자와 리에)를 돕던 그는 다시 칼을 빼든다.
영화는 19세기 중후반 혼란한 시대상황을 원경으로 펼쳐놓는다. 굶어 죽은 아이들이 강으로 둥둥 떠내려오고, 엄격한 신분질서와 가난에 억압받던 민초의 삶이 포개진다.
'무극'에서 장동건의 파트너로 잘 알려진 사나다 히로유키, 누드집 발간 등으로 논란을 빚었던 미야자와 리에가 매력적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세이베이와 최후의 대결을 펼치는 전설의 사무라이 요고 역의 다나카 민. 무용.오페라.미술 등을 아우르는 전위 예술가이자 세계적 무용가인 그가 처음 도전한 영화다. 그는 2년 뒤 만들어진 '메종 드 히미코'(2005)의 게이 하숙집 주인 역으로 우리에게 뒤늦게 알려졌다.
야마다 감독은 1969~95년 총 48편이 제작된, 일본의 대표 코미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로 잘 알려진 노장이다. '황혼의 사무라이'는 그의 첫 시대극이다. 8일 개봉. 15세 관람가.
*** 주목! 이 장면
세이베이와 요고의 마지막 결투 장면. 처음엔 70 합으로 동선을 짰으나 촬영 도중 30 합으로 줄었다. "물리적 충돌보다 정신과 마음이 충돌하는 과정을 대화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말. 기묘한 정적과 격렬한 대결이 결합돼 액션의 '정중동'을 보여준다. 날렵하고도 부드러운 동작은 다나카 민 덕분이기도 하다. 그가 칼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은 그 자체가 비극적인 춤이다.
양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