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앙로역 '추모의 벽' 설치 대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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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구 중앙로역에 '추모의 벽'을 조성하는 문제를 놓고 사고 피해자 가족간 의견이 대립돼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는 복구공사를 맡고 있는 대구지하철공사 측이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이어서 행정력 부재란 비난을 사고 있다.

추모의 벽은 3백40여명(사망 1백92명)의 사상자를 낸 2.18 대구지하철 방화사고의 교훈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희생자 유가족이 주장해 추진돼 왔다.

이에 따라 지하철참사추모사업추진위원회는 역사(驛舍) 복구를 하는 과정에서 지하2층의 벽(길이 30m) 1곳과 기둥 4곳, 지하1층의 기둥 1곳 등 모두 6곳의 참사 흔적 및 추모 글을 보존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부상자 1백46명의 가족 모임인 부상자가족대책위원회 측이 반대하고 나서 사업은 겉돌고 있다.

부상자가족대책위 이동우 위원장은 "추모사업은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부상자 대다수가 사고 후유증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사고 당시를 영원히 떠올리게 할 현장 보존은 결사 반대"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지난 14일 대구지하철공사에서 열린 추모의 벽 자문위원회에서도 이같은 주장을 굽히지 않아 회의가 결렬됐다.

부상자가족대책위 측은 특히 "대구시가 부상자를 배제한 채 희생자 유족과 추모의 벽 조성 및 국민성금 배분 방식 등을 결정한 것은 납득할 수없다"며 추모의 벽 사업이 강행될 경우 집단행동도 불사할 것이란 입장이다.

이에 대해 희생자유가족대책위 측은 "추모의 벽 조성은 대구지하철사고 추모사업추진위가 객관적 시각에서 협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라며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최소한의 현장보존 조치"라는 입장이다.

윤석기 희생자유가족대책위원장은 "추모의 벽 조성에 관한 부상자 가족의 반대는 국민성금 배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시와 지하철공사가 부상자 가족의 반대를 빌미로 추모의 벽 사업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시는 추모사업추진위와 지하철공사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라는 입장이어서 사고 희생자 및 부상자 가족 양쪽으로부터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대구시 조동현 공원과장은 "사고현장 보존 여부는 중앙로역 복구를 맡은 지하철공사가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지하철공사는 연말까지 중앙로역 복구를 마친 뒤 내년 초부터 1호선의 전구간 운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정기환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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