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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엔 아시안 의심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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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국계 미군 장교 제임스 이(James Yee.35)대위가 26일 석방됐다. 체포된 지 두달반 만이다.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이대위는 수년전 시리아계 여성과 결혼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서 탈레반 포로들을 위한 이맘(이슬람교 예배 인도자)으로 활동하다 지난 9월 10일 스파이 혐의로 전격 체포됐다.

남부군 사령부는 그가 기밀문서를 외부로 유출시켰고, 수용소 배치도를 은밀히 작성했다고 발표했다. 미 언론들은 '테러전, 내부 스파이 첫 체포''아시안 미군 장교가 알카에다에 협조'라는 식의 제목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그 혐의라는 게 '문서를 폴더에 끼워 넣지 않고 그냥 들고 다닌 것'과 '관타나모 풍경을 낙서로 끼적거린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재미 중국인단체와 인권기구들은 이를 '인종.종교 차별에 따른 덮어씌우기'로 규정하고 구명활동에 나섰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는 기자회견과 항의 집회가 잇따랐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 앞으로 웨스트포인트 동창생들의 탄원서도 쏟아졌다.

중국계는 특히 이대위를 '제2의 이원호(63)박사'로 보았다. 미 연방에너지부 산하 핵무기개발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이박사는 1999년 핵관련 기밀정보를 빼내 중국에 넘기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혐의 내용은 연구소 내에서 (특수 안전장치가 없는) 일반 컴퓨터로 무기 디자인 자료를 다운로드받았던 것뿐이었고 이는 다른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일상적이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2000년 플리바겐(형 감면 조건부 유죄 인정)으로 석방됐다.

그동안 이대위 구명운동을 해온 '신(新)미국인을 위한 정의 재단'의 세실리아 회장은 "한국계 로버트 김이나 이원호 박사 건에서 보듯이 정보.군사 계통에서 일하는 아시안을 의심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간단한 규정 위반만으로도 언제든지 스파이 혐의를 받을 수 있다"며 이번 제임스 사건도 같은 맥락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는 이날 석방 소식에도 불구하고 몹시 격앙돼 있었다. 무혐의가 아닌 '인신보호'로 석방했을 뿐인 데다 컴퓨터 디스크에서 포르노가 발견됐고, 혼외 정사를 했다는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죄없는 사람을 적 전투병으로 몰아 수갑과 족쇄를 채워 24시간 독방에 처넣어 놓고…, 사죄하고 보상해도 시원찮은데 이제는 자신들의 잘못을 모면하려고 엉뚱한 인신 공격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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